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통' 논란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송영길 의원은 정청래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들추어내고 '친노(친노무현) 감별'에 나서면서 논란을 주도하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9일 국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 의원은 친노 감별은, 그러나 되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그는 최근 정 전 대표를 향해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가 하루 만에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송 의원은 사과를 하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과정에서 보였던 정 전 대표의 과거 이력을 다시 문제 삼았다. 친노 감별을 멈출 뜻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 일각에서 정작 송 의원 본인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쏟아냈던 극단적 발언을 떠올리면서 송 의원에게 한숨과 쓴웃음을 보내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30일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다며 노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 관련 발언에 대해 정청래 전 대표에게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당시 정 전 대표가 중국 유학 중 비보를 듣고 귀국해 봉하마을 조문과 분향소를 지켰던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 의원의 사과는 순수하지 못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곧바로 "노 전 대통령께서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격렬하게 반대했고, 그 선봉에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며 정 전 대표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다는 친노 감별의 공세를 이어갔다.
송 의원이 이처럼 '노무현 적통'을 기준으로 타인을 검증하려 하자, 역설적으로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송 의원 본인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가했던 날 선 비판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송 의원이 과거 노 전 대통령에게 쏟아냈던 발언을 살펴보면, 그가 입을 열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 정국 구상과 관련해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한탄과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향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에 송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누가 대통령 하기 싫은데 하라고 했느냐. 오만하게 국민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며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당이 아니다"라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들이받았다. 당시 노무현 정부 임기 말 지지율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재선 의원이었던 송 의원이 대통령과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 등 23명의 의원들이 탈당하며 열린우리당의 내홍이 절정에 달했던 2007년 2월 송 의원은 초·재선 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대연정 논의부터 시작해서 대통령의 잦은 실수가 있었지만 우리당이 대통령에 대해서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일 때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감'이 아니었는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다.
심지어 송 의원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이명박 서울시장을 공격하고자 노 전 대통령을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낮았던 만큼 이명박 서울시장과 노 전 대통령이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취지다. 참여정부 실패론을 환기시킨 뒤 이명박 후보에게 '고집불통 노무현 프레임'을 씌우려는 정치적 의도였다.
송 의원은 "이명박 후보는 성격과 스타일이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제2의 노무현이다"라며 "적개심으로 이명박을 뽑았다가는 또 '속았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송 의원은 자기 스스로 극언을 쏟아내며 반노(반노무현) 행보를 걸었음에도 무리하게 정 전 대표를 저격하는 배경을 두고 정치권에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특히 현재 당권 구도에서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정 전 대표가 '노사모' 출신임을 강조하며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표심을 공략하자, 송 의원이 "참여정부 시절 100% 칭찬만 한 사람은 없다"는 식의 '피장파장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한민수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송 의원이 깔끔하게 사과만 하면 되지 정 대표가 하지도 않은 말을 끌어들여 또 다른 논란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누가 적통이라는 표현을 썼느냐. 김대중의 역사, 노무현의 역사, 문재인의 역사를 자양분 삼아 이재명의 역사를 활짝 꽃피우자는 말을 어떻게 누가 '적통이다'라는 주장으로 연결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송 의원은 지난 29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정 전 대표에 대한 '노무현 장례식 불참' 발언을 한 경위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노 전 대통령 문제를 가지고 김민석 총리를 공격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 총리는 노 전 대통령 문제에 있어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후단협' 사태을 일으켰고 직접 "노무현은 내가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것으로 지지층은 명확히 알고 있다.
여기에 송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연대 전선을 펴고자 하는 김민석 국무총리의 최근 발언도 '적통' 논란을 키우고 있다. 김 총리는 최근 광주를 찾아 DJ(김대중) 정치 강연을 했는데 “정권재창출을 한 건 김대중 정부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평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친민주당 성향의 스피커로 활동하는 박시영 주식회사박시영 대표는 29일 자신의 유튜브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을 연결시키려고 하는 게 보이는데 지지층 사이의 갈등이 민감한 상황에서 굳이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평가절하해 뭐가 남는 것인가"라며 "김 총리가 후단협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문 전 대통령과도 좋지 않았으니 자신의 정치적 활로를 위한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당대회에서 연대가 예상되는 송 의원과 김 총리가 2000년 5.18 기념일 전야제날 행사 직후 광주 시내 ‘새천년NHK’라는 단란주점에서 함께 여성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는 '새천년NHK 사건'의 당사자라는 점이다.
'뉴 이재명' 기조를 강조하며 두 사람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2021년 9월 페이스북에서 "(당시 술자리에 참석했던) 송영길, 김민석은 이미 21년 전에 퇴출됐어야 마땅했던 사람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다시금 여의도에 들어와 활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에 대한 모독이자 국격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