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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으로 20대 간호사가 또다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018년 '태움' 문화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후 관련 법과 제도는 보완됐다. 그러나 비슷한 비극은 멈추지 않는 중이다. 이는 태움을 일부 개인의 일탈이나 악성 조직문화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조직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27세 간호사가 3년간 '태움' 당하다 세상을 등졌다 : '가해자 비판' 속에 우리가 놓치는 중요한 것들
병원 내 '태움'으로 세상을 떠난 27세 강씨. AI 생성 이미지.

지난 29일 MBC 보도에 따르면 이달 초 27세 간호사 강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시절부터 간호사를 꿈꿔왔던 그는 입사 직후부터 선배 간호사들의 이른바 '태움'에 시달렸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로, 신규 간호사를 교육한다는 명목 아래 폭언과 모욕, 따돌림을 반복하는 병원 내 악습이다. 강씨는 여러 동료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자살할 때까지 태울 수 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그 고통은 3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의 일기장에는 "인사를 안 받아준다", "불이익이 생길까 봐 안 받아주는 인사도 계속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족 역시 생전 강씨가 태움으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반복해서 호소했다고 증언했다.

강씨는 결국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고 일부 사실이 인정됐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3명 가운데 단 1명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됐고, 병원 역시 해당 직원에게 '훈계' 수준의 징계만 내렸다. 가해자들이 모두 그대로 근무하는 와중 강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병원 측은 이후 "부서 이동을 제안했지만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고, 노동부 시정 지시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절차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삶은 끝났다.

이번 사건은 2018년 태움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에도 현장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간호사의 잇따른 죽음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보완되며 사용자 책임도 강화됐지만, 태움 문화는 여전히 의료 현장 깊숙이 남아 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5년 실시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0.8%가 최근 1년 사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71.8%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피해 유형은 폭언과 직장 내 괴롭힘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가해자는 선임 간호사와 의사가 가장 많았다. 피해자의 65.3%는 휴직이나 사직을 고민했고, 17.5%는 자살 충동까지 경험했다고 답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위계와 침묵의 문화는 여전히 피해자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은 하나 더 나아가야 한다. 왜 태움은 사라지지 않는가?

27세 간호사가 3년간 '태움' 당하다 세상을 등졌다 : '가해자 비판' 속에 우리가 놓치는 중요한 것들
MBC뉴스데스크는 6월29일 3년 간의 '태움'에 끝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27세 간호사 강수빈씨의 사연을 보도했다. ⓒMBC 캡쳐

의료계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량, 강한 위계질서, 체계적인 교육 없이 신규 간호사를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관행이 서로 맞물리며 태움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태움은 개인의 성격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태움'을 알린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간호사 박모씨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당시 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긴박한 업무 수행과 부실한 교육 체계, 과도한 업무 부담이 정신적 억제력을 저하시켜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가 역시 태움을 단순한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병원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구조적 문제는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관의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는 평균 12명이다. 미국은 5.3명, 영국은 8.6명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다.

인력이 부족하면 업무는 과중해지고, 교육은 생략되며, 초과근무와 피로는 일상이 된다. 선배는 후배를 충분히 가르칠 여유를 잃고, 후배는 살아남기 위해 폭언과 모욕을 견디는 것이 당연한 문화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이 바뀌어도 구조가 그대로인 한 같은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시야를 조금 더 넓히면 이는 간호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감정노동이 많은 서비스 직군은 사람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높은 정신적 소모와 불규칙한 근무, 과도한 업무량을 동시에 감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4년 2만5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업 조사에서도 감정노동 강도가 높은 직업군은 텔레마케터, 호텔관리자·네일아티스트, 중독치료사, 주유원 순이었다. 의료 현장은 여기에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막중한 책임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더욱 극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10년이 넘은 현재는 직업별 순위에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서비스 노동이라는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고, 사건이 만들어진 맥락보다는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집중시키는 데 익숙하다. 물론 괴롭힘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순간, 우리는 왜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멈추게 된다.

한 사람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일은 쉽다. 원인을 단순화할 수 있고, 비난의 대상을 명확히 할 수 있으며, 비난하는 이는 일정 부분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그러나 정작 그 악인을 계속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 사람이 문제였다고 말하는 순간, 구조는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그래서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눈앞의 가해자만이 아니다. 그 가해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 역시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 개인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논의가 끝난다면 또 다른 강씨는, 또 다른 박씨는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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