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빅테크 기업 아마존과 알파벳이 올해도 자사주 매입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돈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투자로 향했다.
투자자들은 "왜 자사주를 사들이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 투자가 얼마나 큰 기업가치를 만들어낼지를 먼저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두고 "투자자들이 즉각적 주가 부양보다 장기 성장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바라 봤다.
아마존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200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한국 시장의 관심은 여전히 "얼마나 돌려줄 것인가"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본격화한 뒤 국내 증시에서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가 기업가치 제고의 대표적 평가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밸류업의 본질인 '자본배분'이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어디에, 왜 자본을 투입하는지보다 자사주를 얼마나 소각하고 배당을 늘릴 것인지가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핵심 잣대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주주환원은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자본배분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자사주 소각과 배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 인수합병(M&A), 신사업 진출, 사업 재편 역시 미래 수익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자본배분 전략이다.
밸류업의 핵심은 기업이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에 있다. 자본비용을 웃도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자본을 배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판단과 계획을 투자자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지가 기업 가치를 좌우한다.
실제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도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은 기업들에게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자체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경영진이 자본비용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현재의 수익성이 자본비용을 상회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투자와 사업 재편, 연구개발, 주주환원 등 어떤 자본배분 전략으로 이를 개선할 것인지 시장에 설명하도록 했다. 기업들은 각자의 사업 여건에 맞춰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했고, 시장은 그 전략의 타당성을 평가했다.
미국 역시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자사주 소각은 의무가 아니라 기업의 자율적 자본배분 판단에 맡겨져 있다. 성숙 기업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확대할 수 있지만, 성장 기업은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 기회가 있다면 미래 성장에 자본을 우선 배분한다. 시장이 평가하는 것은 어떤 수단을 선택했는지가 아니라 그 선택이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러한 자본배분 관점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이러한 시각이 고착되면 장기적 연구개발과 신사업 투자보다 단기적으로 주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주환원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성장기업의 투자 전략이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의 논리라면 아마존과 알파벳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조차 배당과 자사주 소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밸류업 정책이 미흡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시장이 "얼마나 돌려줄 것인가"만 묻는다면 기업도 그 질문에 맞는 답만 내놓을 것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자사주를 언제 소각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그 기업은 그곳에 자본을 쓰는가"를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