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계를 대표하는 예술가 미와 아키히로(본명 마루야마 아키히로)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2014년의 미와 아키히로의 모습(왼쪽).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란 장미. ⓒ연합뉴스/픽사베이
미와 아키히로는 1997년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에서 자연을 수호하는 늑대신 모로 역을 맡아 특유의 깊고 신비로운 목소리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남성과 여성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독보적인 음색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4년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황야의 마녀 목소리를 연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미와의 개인 소속사인 오피스 28일 미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미와의 부고를 전했다.
소속사는 "미와 아키히로가 6월 20일 오전9시 30분, 노환으로 향년 91세를 일기로 영면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년 동안은 고령으로 인해 활동을 줄이며 체력 회복에 힘써왔지만, 약 3개월 전 건강이 악화된 이후에는 자택에서 요양해 왔다"고 설명했다.
또 "마지막에는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 감사의 말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미와가 생전에 직접 남긴 자필 메시지도 공개됐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기는 사랑의 말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미와 아키히로"
이는 그가 평소 강조해온 신념이었다. 소속사는 "미와의 바람은 이 세상에서 모든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밝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공생 사회가 실현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장례식과 고별식은 유족과 가까운 친지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다. 고별식에서는 생전 그가 가장 좋아했던 노란 장미로 제단을 꾸몄고, 관 안에는 팬들이 보낸 편지들이 함께 담겼다. 추모회나 별도의 작별 행사는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1935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미와는 16세 때 도쿄 긴자의 유명 샹송 공연장 '긴파리' 전속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가수뿐 아니라 작사·작곡가, 배우, 연출가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일본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예술인으로 성장했다.
10살 때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직접 경험한 그는 평생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작사·작곡한 '망령들의 행진(亡霊達の行進)'에서는 전쟁으로 희생된 남녀노소의 영혼이 한밤중 지구 위를 떠도는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노래했다. 특유의 삶의 철학을 담은 인생 상담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본 대중문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미와는 젠더와 인종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대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러한 가치관의 뿌리로 자신의 성장 환경을 꼽았다. 미와는 2018년 12월 GQ JAPAN 인터뷰에서 나가사키에서 유흥업과 카페를 운영하던 집안에서 성장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자신에게 영향을 줬다고 회고했다.
미와는 인터뷰에서 "사람을 볼 때 외모나 나이, 성별, 국적, 재산은 중요하지 않았다"며 "눈앞에 있는 사람의 영혼과 마음이 아름다운지가 유일한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시대가 성별의 경계를 다시 묻던 순간, 미와 아키히로는 '남자다움'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에 주목했다. 그가 이야기한 답은 바로 '인간다움'이었다.
그는 GQ JAPAN과의 인터뷰에서 "남자다움, 여자다움이라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라며 "중요한 것은 인간다움"이라고 강조했다.
미와가 말하는 '인간다움'의 핵심은 이성과 감정의 균형이었다. 미와는 "마음은 지성과 감정, 정신이 결합된 것"이라며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이성으로 감정을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순간적인 분노를 가라앉히고 상황에 맞는 해답을 찾는 냉정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91년의 삶을 통해 남긴 것은 남자다움도, 여자다움도 아닌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길에는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