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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가을,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인 펀드 하나가 무너졌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다. 파트너 명단에는 옵션 가격결정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가 둘 있었고, 나머지 자리도 명문대 박사와 월가의 베테랑 트레이더가 채웠다.

이들이 만든 모델은 시장의 미세한 가격 차이를 포착해 수익으로 바꾸는, 매우 정교한 ‘계산’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계산은 맞았다.

문제는 계산이 틀린 단 한 번이었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모델이 전제했던 '비슷한 자산은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규칙이 통째로 깨졌다. 평소라면 옳았을 판단이 모두 거꾸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자산은 한 달 사이 1250억 달러에서 23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4년을 승승장구했던 펀드는, 단 한 달 만에 몰락했다. 

[허프생각] '거품' 아닌 '계산'으로 달성한 코스피 9천 : 하지만 추정과 레버리지가 만날 때 비극의 크기는 곱셈이 된다
코스피 9000은 '거품'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 아래 달성한 숫자다.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LTCM이 남긴 교훈은 흔히 '아무리 정교한 계산도 틀릴 수 있다'로 요약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반에 불과하다. 100% 들어맞는 미래 예측 모델은 없다는 것은 ‘합리적 경제주체’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파국을 만든 것은 그 빗나간 판단에 얹힌 레버리지였다. 자기자본의 스물여섯 배를 빌려 베팅한 구조 속에서 손실은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커졌다. 

지금 한국 증시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코스피는 6월18일 9063.84로 마감하며 사상 처음 종가로 9천 포인트를 넘어섰다. 올해 첫 거래일과 비교하면 반년 만에 두 배에 가까운 상승이다. 8천 포인트를 넘긴 지 22거래일 만에 다시 1천 포인트를 더했다.

일각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이 상승을 거품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기대가 아니라 숫자를 베이스로 올라간 장세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현재의 상승을 밸류에이션 매력의 상승이 아니라 기업 이익 증가로 설명하고 있다. 주가가 오른 것보다 몇몇 기업의 이익 추정치가 더 빠르게 늘면서, 오히려 코스피 전체의 밸류에이션 부담은 낮아지고 있다. 

시가총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9일 종가 기준으로도 여전히 8배대에 머물고 있다. 닷컴 버블 당시 통신주가 수십, 수백 배의 PER을 받았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두 회사의 시총 비중이 코스피의 절반에 육박하지만, 이들이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의 비중은 그보다도 높다. 쏠림 현상 자체는 사실이지만, 그 쏠림에는 분명 ‘실적’이라는 근거가 있다. 이 장세를 단순한 광기로 치부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을 읽지 못하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를 짚어 두어야 한다. 지금의 주가를 '싸다'고 부르게 만드는 그 낮은 PER은, 미래의 예상 이익, 즉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익을 분모로 계산된 것이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저평가'라는 진단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그리고 그 전제는 생각보다 유동적이다. 하나증권은 올해 3월13일 삼성전자의 2026년 주당순이익(EPS)을 2만7275원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세 달 후인 6월18일, 이 추정은 4만7646원으로 올랐다. KB증권도 마찬가지다. 3월12일 리포트에서 2만8825원이었던 2026년 연간 EPS 추정치는 6월10일 4만5182원으로 급증했다. 

이것이 '추정'의 함정이다. 시장의 추정치가 한 분기 만에 1.5배씩 다시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 방향이 위쪽이라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지만, 한 분기 만에 두 배 가까이 움직이는 숫자는 같은 속도로 반대로도 움직일 수 있다. 추정이 빠르게 상향된다는 것은 곧 추정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장이 온통 장밋빛 가정 위에 올라타 있는 지금, 잊지 말고 챙겨봐야 할 게 하나 있다. 바로 레버리지다.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레버리지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5대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3년7개월 만의 최대 수치를 기록했고, 증권사 신용융자 잔고도 역대 최고 수준에 닿았다. 

빚으로 산 주식은 평소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변동성이 그것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를 때 발생한다.

불과 2주 전 우리는 모두 ‘작은 규모’로 이 일을 경험했다. 코스피의 변동성 장세가 극심하던 6월5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쏟아진 반대매매 금액은 약 4751억 원. 최근 1년 일평균이 115억 원 안팎이었음을 감안하면, 평소 수십 일치 물량이 사흘에 몰렸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평소 1~2%대에서 한때 10.5%까지 치솟았다. 

추정이 빗나가 시장이 출렁이는 순간, 빚을 진 투자자는 방향과 무관하게 청산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그리고 그 청산 물량이 다시 가격을 흔들어 또 다른 계좌를 무너뜨린다.

규모는 다르지만 구조는 LTCM이 겪은 것과 같다. 계산은 단 한번 틀렸을 뿐이지만, 그 빗나감에 레버리지가 곱해지면서 파국이 찾아왔다. 

지금 코스피를 떠받치는 예상이익도, 그 위에 쌓여있는 빚도, 2026년과 2027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벌어들인다는 가정 위에 함께 서있다. 

코스피 9000은 비싼 가격이 아닐지 모른다. 다만 그 가격표에는 '예상이익이 실현된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그 위에 ‘빚’을 얹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모든 호황이 가정 아래 서있다는 것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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