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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란전쟁이 끝났지만 에너지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구 차원의 탄소 규제는 강화될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 제조업은 기후 위기 속에서 '생존'이란 화두를 떠올린다. '한국형 녹색 대전환(K-GX)'은 생존을 위한 목숨줄이다. 그러나 제도는 미흡하고, 관심은 부족하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 개최하는 '2026 기후경쟁력포럼’을 앞두고, 녹색 전환을 위한 전략과 과제를 짚어본다. 

 [2026 기후경쟁력포럼] '기후금융' 셈법이 돈 얼마나 공급했나에서 탄소 얼마나 줄였나로 선회 중 : '선언' 시대 가고 '관리' 시대로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025년 12월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원회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맞춰 정책 기후금융 공급 규모를 연 60조원에서 5년 내 80조원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연합뉴스

금융권이 자기가 빌려준 돈과 투자한 자산에서 나오는 탄소를 숫자로 재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회공헌 영역에 머물던 기후 대응이 여신·투자 전략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고 있다.

계기는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이다. 정부가 7월 한국형 녹색전환(K-GX) 세부 시행안 발표를 앞둔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790조 원 규모의 기후금융을 공급하는 큰 그림을 제시했다. 전환금융의 업종별 기준을 짜는 워킹그룹이 가동되고 있고, 자금 흐름을 판별할 기후금융 웹포털이 5월14일 시범 서비스를 개시해 하반기 기능 고도화를 계획하고 있다. 정책을 법으로 뒷받침하는 '기후금융촉진법'(가칭) 제정도 추진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기후 대응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로 들어온 셈이다.

은행권의 대응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자기 포트폴리오의 탄소를 숫자로 재는 배출량 산정, 고탄소 기업의 전환을 돕는 전환금융 상품, 그리고 고탄소 자산 비중을 줄이는 탈석탄이다.

◆ 측정을 넘어 실적으로, 이제 탄소 감축은 실제로 줄어든 ‘숫자’로 말한다

금융권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영역은 금융배출량 산정이다. 금융기관의 온실가스 배출은 자체 사업장(Scope 1·2)보다 대출·투자로 간접 유발하는 배출(Scope 3)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간접배출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일이 금융권의 탄소 배출 감축 전략의 출발선으로 꼽힌다.

각 금융회사마다 속도와 범위는 다르지만, 최근 대부분의 금융그룹들은 측정을 넘어 실제 감축 수치를 내놓는 단계로 들어섰다.

신한금융그룹에 따르면 그룹의 온실가스 금융배출량은 2025년 11월 기준 4840만tCO2e(이산화탄소 환산톤)로, 2024년 11월보다 5.6% 줄었다. 금융배출량 집약도도 2023년 1억 원당 20.93tCO2eq에서 2025년 16.80tCO2eq로 낮아졌다. 신한금융은 2030년까지 금융배출량을 2910만tCO2e로 낮추기로 하고, 자산군별로 탄소 예산을 할당하는 한편 2022년부터는 그룹·자회사 최고경영자(CEO) 평가에 금융배출량 감축 실적을 반영하고 있다.

목표 설정도 정교해지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11월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기준에 맞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냈고, 2030년까지 ESG 금융 규모를 60조 원으로 늘리는 한편 2050년까지 사업장 배출량과 포트폴리오 금융배출량 모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우리금융그룹은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의 승인을 받아 금융자산 탄소배출량을 2022년 대비 2030년까지 27% 감축하는 중간 목표를 세웠고, KB금융그룹은 금융배출량 산출 대상 자산군을 해외 국채까지 넓혔다. NH농협은행은 농축산 부문 여신 비중이 높아 금융배출량 관리 부담이 큰 만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적용한 대출 심사로 친환경 기업에 가점을 주는 방식을 쓰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탄소 배출 산출 방식을 표준화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신용정보원을 중심으로 만들고 있는 금융배출량 플랫폼이 그 주인공이다. 이 플랫폼은 PCAF(금융기관이 자금 조달된 배출량을 측정하고 공개할 수 있도록 돕는 글로벌 이니셔티브 프로그램) 기준으로 은행별 산출 방식을 통일한다.

신용정보원은 또한 자금 집행 전 심사 단계에서 녹색·전환금융 해당 여부를 판별하는 기후금융 웹포털의 시범 서비스를 5월14일 시작했다. 개별 은행이 제각각 떠안던 데이터 확보 부담을 공공 인프라가 덜어주는 구조가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 고탄소 산업의 전환을 돕는 '전환금융'의 대두, 탈석탄도 ‘선언’에서 ‘관리’로

자금 공급 측면에서는 ‘전환금융’이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환금융이란 태양광·전기차처럼 이미 친환경적인 사업에 돈을 대는 녹색금융과 달리,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 저탄소 구조로 바꾸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프로그램을 뜻한다. 

특히 고탄소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는 기존 산업을 단기간에 폐기할 수 없는 만큼, 이들의 설비 효율화와 연료 전환을 돕는 전환금융이 현실적 감축 수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은 이미 전환금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 일본 사무라이채권 시장에서 400억 엔 규모의 전환채권(트랜지션 본드)을 발행했다. 사무라이채권 시장에서 발행된 첫 전환채권으로, 조달 자금은 국제 전환금융 기준에 따라 고탄소 산업의 에너지 효율 개선 등 친환경 전환 용도로 한정된다. 신한은행은 SBTi에 가입해 섹터별 감축 경로를 인정받고 외부 검증기관 DNV의 검증을 통과하는 절차를 거쳤다. 국제 기준에 맞춘 전환금융 조달이 국내 은행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

우리은행은 올해 4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 'NEXT ESG' 전략과 50개 실행 과제를 담은 'NEXT 50'을 내놨다. 탄소배출 감축, 친환경 기업 자금 지원 확대, 투명한 ESG 공시를 핵심 방향으로 제시했다.

NH농협금융지주도 올해 6월17일 이찬우 회장 주재로 ESG전략협의회를 열고 녹색·전환금융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재생에너지 기반시설 투·융자와 전환금융을 중심으로 산업 전반의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NH농협은행의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활용 사례, NH투자증권의 탄소배출권 거래시스템 기반 탄소금융 사업 등 구체적 실천 사례도 공유됐다.

전환금융의 세부 기준을 짜는 작업은 당국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금융위·산업부·기후에너지환경부·금융감독원·정책금융기관·산업계가 참여하는 전환금융 워킹그룹이 철강·석유화학 등 업종별 감축 경로를 구체화하고 있다. 기준이 확정되면 은행들의 전환금융 취급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갈래인 탈석탄은 이미 금융권에서 사실상 공동의 목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금융권은 석탄을 끊겠다는 약속만으로는 자산 전체의 탄소가 줄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고, 무게중심을 '선언'에서 배출량 산정과 전환금융이라는 '관리'로 옮겨가고 있다. 

2021년 KB·신한·우리·NH·하나·BNK·DGB 금융그룹을 위시한 국내 113개 금융기관이 2050 탄소중립 기후금융 지지를 선언한 것을 출발점으로 KB·신한·하나·우리은행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도 탈석탄의 방향을 고탄소 자산 관리와 전환금융으로 잡았다. 

◆ 공시 의무화와 무역장벽, 금융권 셈법을 바꾸는 변수들 

금융권의 셈법을 바꾸는 또 하나의 변수는 공시제도의 변화다. 올해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 공시해야 하고, 2028년부터는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대형 상장사를 시작으로 지속가능성(ESG) 공시가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대출·투자 등 가치사슬 전반의 간접배출에 해당하는 Scope 3는 산정 인프라를 고려해 2031년 보고부터 단계적으로 공시 대상에 들어간다. 기업의 배출 데이터와 전환계획이 표준화되면, 은행이 차주의 탄소 리스크를 평가하고 금리에 반영할 근거도 함께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강화되는 국제 환경규제도 금융권의 기후금융 전환을 재촉하는 변수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무역장벽이 현실화하면서, 전환금융으로 감축 실적을 쌓은 기업이 수출 길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철강·석유화학 중심의 수출구조를 지닌 한국에서 저탄소 전환은 곧 수출경쟁력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기후금융이 단순한 공급액 나열에 그치지 않으려면 측정·검증 체계가 엄밀하게 작동해야 한다”라며 “은행이 '얼마나 공급했나'를 넘어 '얼마나 줄였나'로 평가받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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