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보도로 전성기를 누린 '뉴스룸'과 대형 드라마, 스포츠 중계권 투자로 몸집을 키워온 JTBC가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는 한 방송사의 경영난을 넘어 종편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공격적인 투자로 몸집을 키워온 JTBC가 끝내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AI 합성 이미지.
JTBC는 한때 한국 언론 지형을 뒤흔들었다. JTBC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몸집 키우기' 전략을 선택했고, '제4의 지상파'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구조에 발목이 잡혔다.
종편의 출발은 2010년 사업자 선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종편 사업자를 선정하자 사회적 논란은 거셌다. 거대 신문사의 여론 독과점 우려, 정부 특혜 논란, 한정된 광고 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진입할 경우 기존 미디어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우려 속에서 2011년 말 출범한 JTBC는 보도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16년이었다. JTBC '뉴스룸'은 이른바 '최순실 파일'을 단독 보도하며 국정농단 사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했고, 시청률과 신뢰도 모두에서 정점을 찍으며 당시 JTBC는 사회적 의제를 주도하는 언론으로 평가받았다.
'공격적 투자'의 끝에 선 JTBC
뉴스의 성공만으로 종편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JTBC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꿈꾸며 공격적 경영 확장에 나섰다. 콘텐츠 제작 자회사 SLL를 중심으로 드라마 'D.P.'를 제작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영화 '범죄도시'의 BA엔터테인먼트, 미국 제작사 윕(wiip)까지 잇따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문제는 미디어 환경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다는 점이다. 드라마와 예능의 주도권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넘어갔고, TV 광고 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콘텐츠 제작비는 치솟는데 이를 뒷받침할 광고 수익은 줄어드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4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JTBC의 방송프로그램 비용은 2619억 원으로 집계됐다. 채널A(1681억 원), MBN(1725억 원), TV조선(2433억 원)을 모두 웃도는 규모다.
박지성 해설위원이 5월21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에서 열린 JTBC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배성재 캐스터. ⓒ연합뉴스
공격적 확장은 스포츠 중계권 시장에서도 이어졌다. JTBC는 기존 지상파 3사(KBS, MBC, SBS)의 공동 구매 체제인 '코리아풀'에 균열을 내며 2026~2032년 올림픽, 2026~2030년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했다. 투자 규모만 약 7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계권을 다른 방송사에 재판매해 비용을 회수하려 했지만 계획은 순탄치 않았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은 KBS와 공동 중계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지만, MBC·SBS와의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막대한 중계권료는 지출됐지만 현금 회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자금 압박이 심화됐다. 회사 내부에서는 법인카드 사용 제한 등 긴축 조치까지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이 15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빌딩에서 열린 JTBC 등 중앙그룹 일부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로 인한 회생 절차 개시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영난은 JTBC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 산업 전체가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방송광고 매출은 2조3073억 원으로 전년보다 7.4% 감소했다. 특히 지상파 광고 매출은 9.9% 줄어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이처럼 KBS, MBC, SBS 역시 광고 시장 축소라는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종편들은 JTBC와 달리 경영이 안정돼 있을까. TV조선, 채널A, MBN 역시 시장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다만 이들은 JTBC처럼 빚을 내 체급을 키우기보다 고정 시청층을 겨냥한 시사 토크쇼와 트로트 예능 등 '저비용·고효율' 콘텐츠 중심 전략을 유지해 왔다. 한마디로 '성장' 대신 '생존'을 선택한 셈이다.
'도전'보다 '생존', JTBC 위기가 한국 방송에 던진 경고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의 위기를 말하는 이미지. AI 합성 이미지
JTBC가 '뉴스룸'을 통해 국정농단 의혹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사회적 의제를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규모 투자와 인력이 있었다. 탐사보도와 장기 취재는 돈이 드는 일이다. 반대로 조금 벌고 조금 쓰는 구조가 정착되면 방송사는 비용이 많이 드는 탐사보도보다 즉각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JTBC의 위기는 한때 '제4의 지상파'를 꿈꾸며 몸집을 키웠던 종편 성장 전략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JTBC 사태로 한국 미디어 산업 전체는 '도전보다 생존'에 더욱 무게를 둘 가능성이 커졌다.
다시 말해 방송 편성표는 시청률이 보장된 트로트 예능, 이미 흥행이 검증된 웹툰 원작 드라마, 논란을 최소화한 뉴스들 중심으로 다시 재편될 것이다. 방송 기획의 기준 역시 '광고주가 선호하는가', '해외 판매가 가능한가'에 더욱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사회적 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탐사보도나 실험적인 예술성을 담은 콘텐츠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창작자들은 더 나은 자본과 제작 환경을 찾아 글로벌 OTT로 이동하고, 남은 제작진 역시 예산 삭감 압박 속에서 실패 가능성이 있는 도전적 기획을 스스로 포기하게 될 수 있다.
이런 방송사의 '생존 전략'은 보통 뻔한 결말을 예정한다. 지상파 방송사는 일정한 규모를 갖추고 있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 길겠지만 종편 방송사는 자칫 '구멍가게' 수준으로 먼저 떨어질 위험성이 크다. 사회적 영향력을 더욱 줄어들 것이고, 재투자 역량도 함께 감소한다. 생존 기한은 늘어나겠지만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면 그 끝을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