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자체 비만치료제 개발 계획인 ‘HOP(Hanmi Obesity Pipeline) 프로젝트’의 네 번째 파이프라인을 공개하며 이 분야 신약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HOP 프로젝트는 △국내 제약사 중 처음으로 독자기술로 개발한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삼중작용제 △근육증가형 비만치료제 △경구용 비만치료제 △비만 예방 및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지털치료제 등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황상연 한미약품 대표이사는 2026년 내 출시 예정인 첫 번째 파이프라인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시장 안착 여부가 이후 프로젝트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상연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17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최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 당뇨병학회 학술대회(ADA 2026)에서 두 번째 근육증가형 비만신약인 ‘LA-MSTN(HM500197)’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아직 전임상 단계인 HM500197은 기존 비만치료제의 단점인 근손실 부작용을 막는 비만치료제 신약후보물질이다.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타틴’과 ‘액티빈’ 중 ‘마이오스타틴’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해 골격근 중심의 제지방을 늘리도록 설계됐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등 인크레틴 계열 비만치료제와 병용하거나 복합제 형태로 개발될 수 있다. 인크레틴 계열 치료제는 식후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크레틴)을 활용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비만·당뇨병 치료제다.
HM500197은 한미약품의 근육증가형 비만약 중 HM17321에 이어 두 번째로 개발됐다. HM17321은 인크레틴 대신 CRF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타깃해 활성화하는 유로코르틴2(UCN2) 펩타이드 유사체다. CRF2 수용체를 타깃으로 활성화하면 기초대사량과 근육량을 늘리면서 체지방만 선택적으로 연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한미약품은 HM17321을 지방 감량과 근육 증가, 운동 및 대사기능 개선을 모두 노릴 수 있는 비만약으로 개발 중이다. 2025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 1상 승인을 받고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근육의 보존과 증강’을 차세대 비만약 시장의 핵심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의 상태에 따른 다양한 병용요법과 맞춤형 치료를 시장에 제시하려는 전략 아래 서로 다른 근육 강화 기전을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비만약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다.
HM17321과 HM500197은 각각 한미약품의 비만약 개발 계획인 HOP 프로젝트의 세 번째와 네 번째 파이프라인이다. 현재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삼중작용제 HM15275 △HM17321 △HM500197을 선보였다.
이 중 삼중작용제는 체중감소와 혈당조절(GLP-1), 위장관 부작용 완화(GIP), 에너지 소비 및 지질대사 조절(글루카곤) 효과까지 포함하는 비만약으로 개발 중이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 2상이 진행되고 있다.
◆ 에페글레나타이드 시장 안착이 중요
한미약품의 첫 번째 비만약인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국 제약사가 개발한 첫 번째 비만치료제라는 영예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 2025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 신청을 완료했다. 앞서 11월에는 식약처가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으로 지정했다. GIFT는 식약처가 희귀·중증질환 치료제 등의 혁신 신약을 신속히 출시하고 환자에게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운영하는 맞춤형 심사 지원체계다.
한미약품은 2026년 내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적응증을 당뇨병으로 확장하기 위한 임상도 진행 중이다. 1월 식약처로부터 임상 3상을 승인받고 4월 투약을 시작했다. 2028년 임상을 마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미약품은 일단 시장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현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품귀 현상을 겪고 있고 가격도 높은 반면,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평택공장에서 자체 대량 생산해 가격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아울러 에페글레나타이드가 한국인과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면서 한국인의 체형과 체질량지수(BMI)에 맞춤형으로 설계돼 체중 감량 효과와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미약품이 글로벌 빅파마에 맞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조심스런 평가도 나온다. 한국인 맞춤형이라는 차별성이 실제 시장에서 구매로 이어질지, 수익성을 보존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야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면 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경구제(알약) 또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제형으로 임상 상위 단계에 진입하면서 앞서가는 모습이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각각 경구제를 출시했고, 암젠, 화이자, 애브비 등은 ‘주 1회 주사제’인 위고비 및 마운자로와 경쟁하기 위해 월 1회 투여하는 주사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암젠(마리타이드)은 임상 3상, 화이자(베로베나타이드)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경우 경구제의 단점(낮은 생체이용률, 까다로운 복용조건) 때문에 게임체인저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아울러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후속 파이프라인인 삼중작용제와 근육증가형 치료제가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임상 종료까지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고 최종 임상 성공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만약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시장 안착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에페글레나타이드에서 얻은 이익으로 후속 파이프라인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겠다는 한미약품의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미약품이 적절한 시점에 삼중작용제(HM15275)와 근육증가형 비만약(HM17321)의 글로벌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황상연 대표, 비만약 성공에 올인
한미약품은 최근 수년간 이어졌던 오너 일가 간의 경영권 분쟁이 진정된 상황이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에서 한편에 섰던 ‘4인연합’ 내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현 대표이사인 황상연 사장은 이 같은 리스크를 관리하고 장기 R&D 프로젝트에 전사적 역량을 결집하는 경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이와 관련 황 사장은 3월31일 정기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에 취임한 후 곧바로 비만치료제 등 핵심 사업목표를 중심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향후 비만약 중심의 캐시카우 창출을 주도할 ‘혁신성장부문’을 신설한 것이다. 그 아래에는 비만약의 성공적인 국내외 안착을 위한 신제품개발센터, 마케팅센터, 평택제조센터, 의약혁신센터, 해외영업팀을 통합 배치했다. 부문장은 사내 신약 R&D 전문가인 김나영 전무를 선임했다. 김 전무는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후기 임상과 제품 개발 전반을 관장해 온 인물이다.
이번 조직개편은 한미약품과 황상연 사장이 비만치료제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