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의 여름인데도 누군가는 나무 그늘 아래서 한강 바람을 맞으며 걷고, 누군가는 43도까지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지나야 한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더위를 견디는 조건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나무 그늘 아래서 한강 바람을 맞으며 걷는 사람과 43도까지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AI 이미지
서울에서 녹지는 휴식 공간만이 아니라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천연 에어컨'이기도 하다. 한때 '에어컨은 계급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듯, 기후재난 시대에는 녹지 역시 새로운 계급이 되고 있다. 녹지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는 곧 '기후 불평등'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지난 10일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서울사무소는 지리정보시스템(GIS)과 위성 데이터 등을 활용해 서울시 자치구별 녹지 면적과 접근성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 총 녹지 면적은 176.4 km², 1인당 녹지 면적은 약 18.3m²이었다. 이 수치의 이면에는 서울의 숨겨진 '녹지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만큼 견뎌야 할 더위의 무게도 달랐다.
녹지 15배, 온도 5도 낮았다? 같은 서울의 다른 여름
서울시 자치구별 녹지 면적 분포를 나타낸 지도. 색이 짙을수록 녹지 면적이 넓고, 옅을수록 녹지 면적이 적다. ⓒ그린피스
분석 결과 서울시에서 녹지 면적이 가장 큰 자치구는 서초구(19.6km²)였다. 반면 녹지가 가장 적은 동대문구(1.3km²)는 서초구의 1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인구까지 고려한 1인당 녹지 면적 격차는 더욱 컸다. 1인당 공공 녹지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은 동대문구(3.61m²)와 영등포구(4.69m²)였고, 가장 넓은 곳은 종로구(75.61m²)와 서초구(48.64m²)였다. 같은 서울에 살지만 누릴 수 있는 녹지의 양은 최대 20배 가까이 차이 났다.
녹지 격차는 풍경의 차이에 그치지 않았고 실제 온도 차이로 이어졌다. 연구진이 위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2024년 6월18일과 8월29일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녹지 면적과 지표면 온도를 분석한 결과, 녹지 면적이 1㎢ 증가할 때마다 지표면 온도가 약 0.23~0.25도씩 감소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폭염이 계속되는 2024년 8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몽마르뜨 공원에 설치된 온도계에 현재 기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사례를 보면, 녹지 면적이 가장 적은 동대문구는 조사 일자 기준 지표면 온도가 최고 43도까지 치솟았다. 반면 녹지 면적이 가장 넓은 서초구는 37.8도 안팎에 머물렀다. 같은 도시, 같은 날씨인데도 시민들이 체감하는 열기는 5도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24년 6월 18일, 8월 29일 지표면 온도를 보여주는 지도. 녹지에서 멀어질수록 지표면 온도가 높아지기에 붉은 색으로 보인다. ⓒ그린피스
이런 녹지 격차는 소득 격차와도 일정 부분 맞물려 있었다. 1인당 공공 녹지가 부족한 동대문구와 구로구(9.09m²)의 월평균 소득 수준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각각 하위 19위와 18위였다. 반면 녹지 면적 상위권인 서초구의 소득 수준은 서울시 내 2위였다.
가난한 동네가 더 뜨겁다? 폭염을 키우는 기후 불평등
이 같은 현상은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재난의 영향은 애초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찾아오지 않는다. 미국 산림청이 5700여 개 도시 지역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저소득층 거주지는 고소득층 지역보다 녹지 면적 비율이 낮고 기온은 약 1.5도 더 높았다. 특히 여름철에는 저소득층 지역의 기온이 부유한 지역보다 최대 4도까지 높게 나타나 녹지 격차가 곧 폭염 노출 격차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햇빛을 받으면 열을 흡수하고 저장해 도시 열섬 현상을 심화시킨다. 반면 녹지는 수분을 내뿜는 증산 작용을 통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다. 결국 도시 안에서 얼마나 많은 녹지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여름철 체감 온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연일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절기상 가장 더운 대서를 하루 앞둔 2025년 7월21일 밤 서울 시내 한 아파트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온도가 높은 곳은 붉게, 낮은 곳은 푸르게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공간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차이가 왜 생겼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빽빽한 주거지와 상업시설이 먼저 들어선 지역들은 녹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 계획적으로 조성된 지역은 비교적 넓은 공원과 녹지를 함께 갖출 수 있었다.
통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양극화도 존재한다. 서초구의 지표면 온도가 낮은 이유는 우면산과 청계산 같은 대규모 자연 산림의 영향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자연의 혜택조차 도시 안에서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쪽 한강변에 들어선 최고급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은 내부에 풍부한 조경 공간을 갖추고 있다. 입주민들은 단지 안 녹지와 한강 바람을 누릴 수 있지만, 거대한 건물들은 동시에 주변 지역으로 향하는 '바람길'을 차단하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 결과 바람이 닿지 못하는 주변 지역은 열기를 그대로 떠안게 된다.
사라지는 공공녹지,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다
무더운 날씨를 보인 5월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에서 한 아이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 녹지 접근성에서도 문제가 있다. 도심 공원과 녹지는 인근 100~300m 범위의 기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와 유럽 여러 국가들은 주거지에서 300m 이내에 공공 녹지가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을 서울에 적용한 결과는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서울 시민 가운데 약 24만 5000명은 집 근처에서 녹지 혜택을 사실상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누구나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원만을 기준으로 접근 거리를 100m 이내로 좁히면 ‘녹지 소외 인구’는 무려 420만 명으로 늘어난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등 서울 시내 모습이다. ⓒ연합뉴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전역에서 진행되는 노후 주거지 재개발과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녹지 공간을 줄이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 과정에서 기존의 나대지와 녹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지하 주차장 위에 조성된 인공 조경이 대신한다.
대형 건설사들은 이를 친환경 단지라고 홍보하지만, 대부분은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사적 녹지다. 반면 담장 밖 시민들이 함께 누릴 수 있었던 공공 녹지는 점점 줄어든다. 결국 도시 전체의 녹지는 늘지 않은 채 녹지 접근권만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신민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도시 녹지는 폭염과 폭우라는 기후 재난에 적응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필수 인프라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차별적으로 누리고 있다"며 "이미 뜨겁고 꽉 막힌 도시에서 이제 시민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재개발을 통한 사적 조경 확대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자연 숲을 보호하고 공공 녹지를 확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월21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을 방문해 여름철 집중호우 및 폭염 대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폭염은 자연재해이지만 그 피해의 크기는 결국 사회가 만든다. 서울의 여름이 누구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녹지는 도시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는 공공 인프라다. 그 인프라가 누구에게 얼마나 주어지는지는 오늘날 서울이 마주한 또 하나의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