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부에 장벽을 세우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족과 다리를 잃은 주민들은 이제 머물 곳마저 잃을 위기에 놓였다.
메랄 알바빌리(8)가 2026년 6월8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중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아실 아부 부테이한(21)이 2026년 5월7일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캠프의 파괴된 집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메랄 알바빌리(8세)는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오른발을 잃었고,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목숨을 잃었다. 아실 아부 부테이한(21세)은 자신의 집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어머니와 아버지, 남동생이 숨지고 자신도 중상을 입어 두 다리를 잃었다.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이 사진들에는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현재 모습이 또렷하게 담겼다.
2026년 7월26일 가자시티의 한 텐트촌에서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수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을 무너뜨렸지만, 전쟁의 상처는 폭격이 멈춘 뒤에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가자지구 주민들은 해안선을 따라 좁은 땅에 갇혀 살고 있다. 남겨진 주민들은 파괴된 터전뿐 아니라 갈수록 좁아지는 이동 공간과 마주하고 있다.
가자지구에 두 번째 장벽이 들어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하마스의 침투와 지하 터널 공격을 막기 위해 가자지구 접경 지역에 철책과 감시 장비, 지하 방벽 등을 설치해왔다. 하지만 전쟁 이후에는 가자지구 내부에 흙둑과 참호 형태의 방벽을 건설하며 새로운 통제선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의 장벽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외부 경계’였다면, 새로운 방벽은 가자 내부를 나누는 또 다른 경계가 되는 셈이다.
2026년 7월 15일 미국 위성업체 플래닛랩스 PBC가 촬영한 위성사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에 건설 중인 흙둑 형태의 방벽이 사진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다. 방벽 한쪽에는 군사기지 2곳이, 다른 한쪽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모여 있는 텐트촌 무와시가 자리하고 있다. ⓒPlanet Labs PBC/AP/연합뉴스
30일(현지시각) BBC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내부에 새로운 방벽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동과 거주 공간이 더욱 제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의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이 방벽은 가자지구 곳곳에서 확인되며 전체 길이가 42㎞ 이상에 이른다. 일부 구간은 휴전 이후 설정된 경계선인 ‘옐로 라인(Yellow Line)’보다 가자 내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2026년 7월28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이어지는 가운데, 피란민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몸을 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날 가자지구 전역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최소 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지정된 옐로 라인까지 병력을 철수하기로 했다. 합의상 이스라엘은 옐로 라인 뒤편, 가자지구 전체 면적의 약 53%에 해당하는 지역을 임시로 통제하게 됐다.
이스라엘군의 통제 범위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이스라엘군(IDF)이 가자지구의 60%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고, “70%까지 이동하는 것이 목표”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스라엘군은 당초 콘크리트 블록으로 옐로 라인을 표시했지만, 이후 일부 표식을 가자 내부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휴전 직후부터 새로운 장벽망 건설에 착수했다. 현재 방벽은 옐로 라인 전체 구간의 약 85%를 덮고 있으며, 가장 긴 단일 구간은 13.8㎞에 달한다.
2026년 7월30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과 텐트 잔해에서 소지품을 챙기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이미 전쟁으로 집을 잃은 가자 주민들이 임시 텐트와 대피소를 전전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과 군사 활동이 이어질 때마다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이곳저곳으로 쫓겨 다닌 주민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방벽 건설이 주민 보호와 하마스 재건 방지를 위한 안보 조치라고 설명한다. 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 장벽이 이미 좁아진 주민들의 생활 공간을 더욱 축소하는 새로운 경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