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파우치 전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서 수정헌법 제5조에 따른 진술 거부권을 111회 행사했다.
이번 청문회는 파우치 소장이 중국 우한 연구소의 위험한 연구에 자금을 대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발했다고 의심하는 랜드 폴 위원장의 소환에 따라 열렸다.
폴 위원장은 그를 의회 모독죄로 고발할지 여부를 다음 주 표결에 부치겠다고 예고했다. 파우치 박사 측은 이번 청문회 자체가 자신을 구속하기 위한 '정치적 함정'이라고 반발했다.
앤서니 파우치 전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 ⓒ UPI=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29일(현지시각) 파우치 박사가 3시간에 걸친 청문회 내내 "변호인의 자문에 따라 수정헌법 제5조에 따른 권리로 답변을 거부한다"는 문장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파우치 박사는 1984년부터 2022년까지 38년간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로널드 레이건부터 조 바이든까지 7명의 미국 대통령을 보좌해온 감염병 분야 최고 권위자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봉쇄·마스크 착용 등을 둘러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반목하며 정치적 앙숙관계로 돌아섰고, 이후 트럼프 진영과 공화당의 집중 표적이 돼왔다.
그를 소환한 폴 상원의원은 안과 전문의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코로나19 기원과 관련해 파우치 박사와 수년간 대립해온 인물이다.
폴 의원은 파우치 박사가 이끈 연구소가 우한의 '기능 강화' 연구에 자금을 지원해 사실상 팬데믹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며, 파우치 박사가 이를 감추기 위해 의회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몰아세워왔다.
폴 의원은 청문회 말미에 "우한 연구소 실험 때문에 수백만 명이 사망했느냐"고 몰아붙이기도 했고, 파우치 박사는 경찰 호위를 받으며 퇴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질문 대신 파우치 박사의 38년 공직 봉사에 감사를 표하며 청문회를 '함정'으로 규정했다.
조시 홀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답변 거부를 알면서도 조롱성 질문을 이어갔고, 파우치 박사가 2021년 받은 100만 달러 상금을 문제 삼으며 "오만불손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청문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파우치 박사를 겨냥한 공화당의 정치적 압박이 최고조에 달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파우치 박사는 모두발언에서 38년간 의회에서 200회 이상 증언해왔다며 감독 권한을 존중해왔다고 밝혔다.
이날 청문회는 폴 의원이 파우치 박사 측 변호인의 발언을 막고 경호원을 시켜 퇴장시키면서 격앙됐다. 폴 의원은 주말 사이 파우치 박사의 개인 일기장 1100여 페이지를 공개해 백신 안전성, 코로나19의 우한연구소 유출설, 봉쇄정책 등 옛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핵심 쟁점인 우한 연구소 자금 지원과 관련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미국 자금으로 연구된 바이러스가 코로나19 원인 바이러스와 명백히 다르다고 재차 확인했으나, 폴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부 장관은 해당 일기장을 폴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우치 소장의 일기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우한 연구소 유출설에 새로운 사실을 더하진 않았지만, 유명인들과의 친분을 즐기는 개인적 소회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두서없다"고 묘사한 대목이 담겨 공화당에 있는 파우치 소장 비판론자들에게 새 공격 소재를 제공했다.
한편 155명 이상의 의사·과학자들은 공개 서한을 통해 파우치 박사를 옹호하며 정부와 공화당의 과학자 공격을 규탄했다. 미국 국토안보위원회 민주당 간사 게리 피터스 상원의원은 이번 조사가 "결론을 내리고 파우치 박사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