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연맹(UEFA) 소속 55개 회원국이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월드컵 ‘상업화’ 구상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국제축구연맹(FIFA)가 월드컵 등 주요 대회의 상업적 권리를 운영할 회사 지분을 민간 투자자에게 매각할 경우 월드컵 등 FIFA 주관 모든 대회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2026년 7월19일(현지시각) 2026년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경기 후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0일(현지시각) 가디언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UEFA 소속 55개 회원국은 이날 이례적으로 긴급회의를 열고 FIFA의 계획이 강행될 경우 향후 월드컵을 비롯한 FIFA 주관 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해당 제안을 “만장일치로 명백하게 거부한다”고 밝혔다.
연령별 대회까지 포함하면 가장 먼저 보이콧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대회는 U-20 여자월드컵이다. 이 대회는 오는 9월5일부터 폴란드에서 열릴 예정이며, 잉글랜드를 포함해 UEFA 회원국 6개국이 24개 참가국 가운데 하나로 출전할 예정이다. 성인 국가대표팀 차원에서는 내년 여자월드컵이 첫 보이콧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이 실제로 불참한다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의 흥행과 권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도 UEFA의 결정에 힘을 보탰다. FA 대변인은 30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유럽의 동료 축구협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동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우리는 FIFA의 계획에 반대한다. FIFA 월드컵은 축구의 것이며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역시 긴급회의를 열고 FIFA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정치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앤디 버넘 영국 신임 총리는 28일(현지시각) 저녁 FIFA의 계획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첫 정치인이 됐다. 그는 엑스(X, 옛 트위터)에 월드컵은 “애초 누구의 것도 아니었기에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썼다.
버넘 총리는 이어 “이는 우리가 강력하게 지지하는 원칙에 따른 결정”이라며 “축구는 억만장자 투자자들의 것이 아니라 팬들의 것이다. 이제 충분하다. 우리 축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앞서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월드컵과 클럽 월드컵 등 FIFA가 주관하는 대회의 상업적 활동을 맡을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그 지분을 최대 20%까지 민간 투자자에게 넘기는 계획를 내놨다. FIFA의 상업적 활동을 총괄하게 될 이 자회사의 이름은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FIFA Forward Enterprises)’이다.
가디언이 입수한 ‘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 회원국 자료’에 따르면, FIFA는 대회를 늘리고 티켓 가격을 올리는 것은 물론 부채까지 끌어다 쓰며 수익을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FIFA는 이 회사 지분 20%를 미국인 투자자 조슈아 쿠슈너에게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쿠슈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동생이다. 자료는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작성했다.
FIFA는 211개 회원 협회에 2000만 달러(약 300억 원)의 가입 보너스를 지급하는 한편, 매년 열리는 전 세계 FIFA 주관 대회를 현재 200개에서 450개로 두 배 이상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월드컵 개최 주기를 2년으로 줄이는 방안도 다시 수익 확대 카드로 거론됐다.
JP모건은 월드컵 등 주요 대회의 TV 중계권을 유료 채널이나 스트리밍 업체에 판매해 미디어 중계권 수익을 확대·최적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FIFA는 스위스에서 비영리단체로 등록돼 있다. 인판티노 회장의 계획은 이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FIFA의 통제를 받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상업적 수익을 내고, 이론적으로는 그 수익을 회원국에 분배하는 것이다.
이 거래가 성사되려면 FIFA 회원국 211개국 가운데 과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각국은 똑같이 한 표씩 행사한다.
인판티노 회장이 추진하는 ‘축구의 기업화’에 유럽 축구계가 집단으로 제동을 걸면서, FIFA가 과연 이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