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주성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수익 구조 다변화와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엄 사장에게 새롭게 추진 중인 발행어음, 퇴직연금 등 신사업들의 성패가 연임 여부를 결정지을 핵심 관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엄 사장이 이처럼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에는 키움증권의 절박한 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키움증권을 ‘개인 투자 플랫폼의 최강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두 개의 핵심 수익 기반, 즉 위탁매매와 신용공여가 각각 치열한 시장 경쟁과 자본 한도 규제에 막혀 동시에 입지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5월28일 서울 여의도 TP타워에서 열린 퇴직연금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키움증권
◆ IB·퇴직연금·발행어음까지, 엄주성 키움증권 체질 개선 승부수
엄 사장은 2024년 1월 취임한 직후부터 위탁매매에 편중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사업 구조를 재편해왔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엄 사장의 취임 전인 2023년 2.7%에 불과했던 IB부문 시장점유율은 2025년 기준 5.7%까지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지난해 인가를 받은 발행어음 사업은 출시 석 달 만에 잔고 1조 원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올해 6월1일 깃발을 올린 퇴직연금 사업은 엄 사장이 던진 최대의 승부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엄 사장은 증권사 가운데 15번째 진입이라는 한참 늦은 출발을 극복하기 위해 파격적 조건을 내걸었다. 가입 첫 해 수수료(DB, DC, IRP 모두 포함)를 전액 면제하고, 수익률이 기준에 미달하면 수수료를 받지 않는 제도를 업계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엄 사장은 퇴직연금 출시를 앞두고 열린 간담회에서 "10년 내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 10%, 사업자 5위권 진입"이라는 도전적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 흔들리는 ‘개인 투자 최강자’, 파이 커져도 점유율은 뒷걸음질
키움증권이 이처럼 새로운 수익원 확보를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절대적 우위를 점하던 브로커리지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증권업계가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는 만큼 실적은 매우 양호하다. 키움증권의 올해 1분기 일평균 약정 금액은 27조8천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조8천억 원)의 3배를 훌쩍 넘어섰다. 폭발적 거래대금 증가에 힘입어 1분기 순이익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02.6% 급증한 4774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전체 시장에서 키움증권이 가져가는 몫의 비율, 즉 시장점유율은 줄어들고 있다.
키움증권의 올해 1분기 IR자료에 따르면 키움증권의 국내 주식 시장점유율은 2025년 1분기 29.7%에서 2025년 2~4분기에 각각 29.4%, 27%, 26.5%로 점진적으로 감소했으며 2026년 1분기에는 25.7%를 기록했다. 1년 사이에 전체 시장의 4%를 경쟁사에게 넘겨준 것이다.
전체 시장을 기준으로 본 국내 주식시장 점유율 역시 2023년 20.6%에서 2025년 기준 18.0%까지 내려앉았다. 2006년부터 무려 20년 동안 지켜온 ‘1위’ 자리는 여전히 지키고 있지만, 시장에 미치는 지배력 자체는 확연히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 목끝까지 찬 신용공여 한도, 시장 성장 못따라간다
위탁매매 부문이 심화되는 경쟁의 문제라면, 키움증권의 또 다른 수익 축인 신용공여는 ‘자본’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키움증권의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키움증권의 신용공여 잔고(신용거래융자·증권담보대출·매도대금담보대출 등 합산)는 5조9993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점 별도 기준 자본총계가 6조2994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용공여 잔고는 자기자본의 95.2%에 이른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의 투자자 신용공여가 별도 기준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도가 목끝까지 차오른 상태다.
부족한 여력은 고스란히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키움증권의 올해 1분기 신용공여 잔고 가운데 신용거래융자금은 4조4122억 원으로 2025년 1분기(2조9549억 원)보다 49.3% 늘었고, 신용융자, 신용대주, 예탁담보대출을 모두 합한 신용공여 잔고 역시 같은 기간 38.9% 많아졌지만, 신용융자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16.9%에서 13.3%로 떨어졌다.
개인투자자들의 레버리지 수요가 폭증하는 시장 상황에서 잔고 자체는 늘렸음에도, 한도 부족 탓에 시장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점유율을 내준 것이다.
장영임 SK증권 연구원은 “키움증권의 2분기 신용공여 평균잔고는 5조5천억 원이 최대치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신용공여 한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 역시 “시장 전체가 성장함에 따라 투자자 예탁금과 신용공여 잔고가 모두 증가했으나, 신용 한도가 부족한 문제는 지속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바라봤다.
◆ 수익구조 편중, 변동성 장세 속 커지는 리스크
두 개의 핵심 기반이 좁아지는 현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키움증권의 수익 구조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별도 기준 키움증권의 순영업수익 7325억 원 가운데 절반인 3655억 원이 위탁매매수수료에서 나왔다. 수수료 부문으로 포커스를 더 좁혀보면 키움증권의 순수수료수익 3661억 원 가운데 위탁매매수수료수익은 3655억 원, IB수수료수익은 533억 원이다.
이자 부문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키움증권 IR자료에 따르면 키움증권의 1분기 이자손익의 58.1%가 신용공여 이자수익에서 나왔다.
수익의 무게중심이 온전히 개인 고객의 거래 활동에 놓여 있는 만큼, 거래대금과 신용잔고가 식어버리면 회사의 두 축이 동시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달 들어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고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등 증시 변동성이 극도로 커진 현재의 상황이 엄주성 사장과 키움증권에게 유독 뼈아픈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6월2일 종가 기준 8800을 돌파하며 9000에 가까이 다가섰던 코스피지수는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4일부터 약세로 전환했으며 5일에는 5.54%, 8일에는 8.29% 하락했다. 9일 8.18% 상승하며 잠시 반등했지만 10일에는 다시 4.52% 하락하며 8천 아래로 떨어졌다.
코스닥 역시 마찬가지다. 5월 한 달 코스피 지수가 26.7% 상승하는동안 반대로 13.5% 하락하며 코스피 상승장에서 철저히 소외돼있던 코스닥 지수는 6월5일 4.5%, 8일 9.08% 하락하며 코스피의 하락세를 함께 경험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키움증권의 최근 실적이 워낙 좋은 데다 취임 당시와 비교하면 체질 개선 효과도 거두고 있는 상황인 만큼 엄 사장의 연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이제 막 시작하는 퇴직연금 사업 등의 향방은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