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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SNS 피드를 따뜻하게 채우는 가정의 달. 하지만 변호사로 26년을 살다 보면 가족이라는 이름이 늘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가장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두 얼굴 사이에서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5월이 다 지나도록 잘 보이지 않는다.

26년간 법정에서 사람을 만나오면서 내가 가장 자주 떠올리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장면들이다.

[변호사 왕미양의 괜찮아요, 그게 인생이에요] 아이는 훗날 정말 좋은 친구가 될 거예요
때로는 한 번의 선택이, 한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결심이 가족의 모양을 다시 그린다. AI 이미지. ⓒ허프포스트코리아

몇 년 전 어느 겨울날, 한 젊은 여성이 이혼 문제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결혼 2년 차에 6개월 된 아기를 두고 있었다. "아이 양육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바로 답변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남편이 입양 보내자고 했어요. 남편도 키우기 힘들다고 하고, 친정 엄마도요. '네 서방네 아이지, 우리 아이가 아니다'라고 하시면서요."

피붙이를 두고 '우리 아이가 아니다'라는 말을 꺼낼 정도라면 그 어머니의 마음 역시 결코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다. 딸이 더는 다치지 않기를,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청춘을 다 쓰지 않기를 바라는, 그 나름의 가장 절박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이 딸의 마음에 어떤 무게로 닿았을지를 생각하면 6개월 된 아기를 두고 나와 마주해야 하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이혼은 당사자의 결정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함부로 따질 수 없는, 한 사람의 가장 내밀한 결단이다. 하지만 6개월 된 아기를 포기한다는 결정 앞에서는 변호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를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제가 만나는 분들 중에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꼭 키우고 싶다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이미 아이가 있잖아요. 아이를 잘 키우면 훗날 정말 좋은 친구가 될 거예요."

그는 일주일을 고민하다 다시 사무실을 찾아왔다. 처음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어딘가 차분해진 표정으로, 그러나 단단해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변호사님 말씀을 듣고 며칠을 생각했어요. 이 아이가 20년 후에 자라서 나를 찾아온다면, 그때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 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아이는 제가 키우겠습니다."

이후 이혼 절차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양쪽 모두 빨리 끝내고 싶어 했고,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문제도 큰 다툼없이 마무리되었다.

얼마 뒤에 그에게서 짧은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변호사님, 그때 해주신 말씀이 진짜였어요. 이 아이가 벌써 제 가장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아요."

그토록 완강하게 입양을 권유하던 친정 엄마는, 어느새 누구보다도 외손녀를 끔찍이 아끼는 외할머니 바보가 되었다고 했다. 그 메시지를 받은 날, 사무실 창밖의 볕은 유난히 따뜻했다.

가족은 자동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피가 섞였다고 해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한 번의 선택이, 한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결심이 가족의 모양을 다시 그린다.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부부 상담을 거쳐 지금은 함께 산을 오르는 부부도 있었다. 그러니 5월에는 따뜻하고 단란하게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했을 시간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더 단단한 종류의 사랑이 있을 것이다.

글쓴이 왕미양은 변호사로 현재 한국여성리더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6년 1월에 제13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직을 마쳤다. 여성 변호사가 100명 남짓이던 2000년에 법조계에 첫발을 들인 이래, 성남여성의전화 무료 상담을 시작으로 아동·여성·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활동에 매진해왔다. 2010년부터는 13년 동안 파산관재인으로 2,400여 명의 채무자를 만나며 "법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을 굳혔다. 2026년, 여성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폭력 피해자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 지원 공로로 '올해의 서울여성상'을 수상했다. 칼럼을 통해 법조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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