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과거 기술수출했다가 반환됐던 대사이상지방간염 치료제의 임상을 다시 추진한다.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을 늘리면서 성장동력을 추가 확보한 셈이지만, 아직 임상 초기 단계여서 갈 길이 먼 상태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은 현재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 중에서 ‘렉라자’의 뒤를 이을 ‘포스트 렉라자’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대사이상지방간염(MASH) 치료제 신약후보물질(YH25724)의 국내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YH25724는 MASH 및 관련 간질환을 적응증으로 하는 신약으로, 섬유아세포성장인자21(FGF21)과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수용체에 동시 작용하는 이중작용항체다. 2019년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총 8억7천만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했으나, 이후 베링거인겔하임이 내부 개발 우선순위를 조정하면서 2025년 3월 권리를 반환받았다
비록 반환되기는 했지만 YH25724를 실패한 물질로 보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베링거인겔하임이 진행한 초기 임상 데이터에서 간 지방 감소(최대 40.5%) 신호가 뚜렷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확인한 유한양행은 다시 임상을 추진했고 이번에 임상 1상 계획을 승인받는 데 이르렀다.
이번 반환으로 유한양행이 입은 재무적 손실도 없다. 오히려 유한양행은 계약금 4천만 달러와 유럽 1상 시작으로 받은 마일스톤 1천만 달러 등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 핵심 파이프라인 5종 ‘포스트 렉라자’로 육성
유한양행은 5월 말 열린 ‘R&D 데이’에서 이른바 ‘포스트 렉라자’로 육성하고 있는 차세대 파이프라인 5종을 공개했다. 2026년 1월 기준 유한양행이 R&D를 진행하고 있는 파이프라인 29개 중 유력한 파이프라인 5개를 추린 것이다.
해당 신약후보물질은 △MASH 치료제 YH25724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레시게르셉트) △고형암치료제 YH42946 △이중항체 고형암치료제 YH32367(네스프로타믹) △이중항체 고형암치료제 YH32364 등이다.
이 중 YH35324는 임상 2상, YH42946과 YH32367, YH32364는 임상 1/2상을 각각 진행 중이며, YH25724는 임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 고셔병 치료제 신약후보물질인 YH35995도 2026년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서 주목받았다. YH35995는 국내 1상을 진행 중이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은 이들 신약후보물질 가운데 ‘포스트 렉라자’를 발굴해 회사의 중장기 성장동력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렉라자는 유한양행이 개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국산 31호 신약이다. 2018년 미국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됐다. 총 계약규모는 9억5천만 달러(약 1조4천억 원)로, 유한양행은 지금까지 약 3억 달러를 수령했다.
현재 ‘포스트 렉라자’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신약후보물질은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다. YH35324는 명확한 외부 요인 없이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두드러기나 혈관부종이 지속되는 만성 피부 질환인 만성자발성두드러기(CSU)를 적응증으로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YH35324는 거대한 알레르기 치료제 시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블록버스터급 의약품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임상 단계 진행 속도도 비교적 빠른 편이다. 특히 임상 1상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면역글로불린E(IgE) 억제 효과가 경쟁 약물인 노바티스의 졸레어(성분명 오말리주맙)보다 뛰어났다는 것이 유한양행 쪽의 설명이다.
회사 쪽은 YH35324의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도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도 국내 제약사의 대형 기술수출 후보 중 하나로 YH35324를 꼽고 있다.
이번에 임상 1상을 신청한 YH25724 또한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지방간 감소와 염증 개선, 간 섬유화 개선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될 확률이 높다.
이중항체 항암제인 YH42946과 YH32367에 대한 기대도 크다. 고형암 치료제인 YH42946은 존슨앤존슨의 표적항암제 리브리반트와 병용요법으로 쓰이는 렉라자처럼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으로 1차 표준치료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 목표다. YH32367은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HER2) 타깃 항암제로, 유방암, 위암, 폐암 등 다양한 고형암에 쓰일 수 있다.
◆ 렉라자로 번 돈 R&D 재투자 ‘선순환 구조’ 구축
이와 같이 경쟁력 있는 신약후보물질들이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허가와 상업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유한양행의 신약후보물질들은 대부분 임상 초기~중기에 머물러 있다. 3상에 진입한 신약은 아직 없다.
한편 유한양행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상승한 매출액과는 다르게 수익성은 높이지 못하고 있다. 2023~2025년 유한양행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3.07%, 2.65%, 4.77%에 그쳤다. 2025년 영업이익률로 보면 이른바 ‘5대 제약사’로 함께 일컬어지는 한미약품(16.66%)나 대웅제약(12.53%)보다 낮은 수치다. 종근당(4.76%)과 GC녹십자(3.47%)에 견줘서만 미세하게 앞서 있다.
유한양행의 낮은 수익성은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한 R&D 비용과 더불어, 회사 매출액 중 도입 의약품 또는 공동판매 의약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도입 의약품이나 공동판매 의약품은 상대적으로 마진율이 낮다.
요컨대 유한양행은 회사의 수익성을 개선하면서도 ‘포스트 렉라자’ 후보물질들의 임상을 차질 없이 완료해 상업화에 성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렉라자의 글로벌 판매 확대에 따라 유입되는 마일스톤과 로열티가 차세대 신약 개발 자금으로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이를 통해 현재 추진 중인 파이프라인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그 결과로서 회사의 체질을 자체 제품과 신약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조욱제 사장은 이 같은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데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조 사장의 임기는 2027년 3월15일까지다. 유한양행 대표의 임기는 1회 연임을 포함해 최대 6년으로, 조 사장은 2021년 대표에 올라 2024년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조 사장은 마일스톤과 로열티 추가 확보를 위한 후속 기술수출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2024년 10월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2025~2027)’에서도 매년 기술수출을 1건 이상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포함됐다. 다만 첫해인 2025년에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조 사장은 신약개발 전담 R&D 법인인 ‘뉴코(NewCo)’ 설립도 고려하고 있다. 초기 임상 단계의 파이프라인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외부 투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