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깃대를 기자에게 휘둘렀고, 국가대표 선수는 경기장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이른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나흘째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6월7일 밤 서울 송파구 개표소였던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
문 열어달라며 애원한 국가대표 선수들
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출입구 앞에 멈춰 섰다. 오는 24일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훈련에 한창이어야 할 핸드볼 여자 유소년(U20) 국가대표 선수들이었다.
핸드볼 여자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이 8일 잠실 개표소 앞 재선거를 촉구하는 시위대 앞에서 가방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시위대에게 핸드볼경기장 출입을 허락받아야 했다. ⓒ엑스 갈무리
경기장이 시위대에 막히는 바람에 인근 한국체대로 훈련장을 옮기려던 참이었다. 공과 장비를 꺼내 가야 했지만 입구를 가로막은 시위대의 기세에 숨이 턱 막혔다. 결국 20세 안팎의 한 선수가 시위대를 향해 "제발요"라고 간청한 뒤에야 겨우 문이 열렸다.
장비를 챙겨 나오자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선수들의 가방 등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증거(투표용지)를 빼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졸지에 소지품 검사를 당해야 했다.
안경 날아가고 밀쳐지고, 취재진 폭행 당해
JTBC는 5일 잠실 개표소 앞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가 시위 참가자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을 6일 보도했다. ⓒJTBC
현장의 광기는 취재진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폭발했다. 6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일 경기장을 빠져나오던 JTBC 취재진은 순식간에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선관위 직원이 아니라 취재하러 온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소용없었다.
영상에서 고성과 함께 한 여성이 들고 있던 태극기 깃대로 기자의 손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기자의 휴대전화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누군가 기자의 안경을 빼앗아 멀리 던져버렸다. 기자의 가방끈을 붙잡고 밀치고 당기기도 했다.
한국기자협회 JTBC지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언론 자유에 대한 명백한 폭력"이라며 법적 대응을 선포했다.
생방송 중인 카메라 앞에서도 일부 시위대의 언어적 폭력은 예외가 아니었다. 연합뉴스TV 기자가 6일 "시위대가 차량 등으로 출입구를 막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하자, 화면 밖에서 격앙된 남성들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자신들을 '시위대'라고 불렀다는 게 이유였다. 날것 그대로의 욕설은 전국의 안방으로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너 중국인이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폭력은 오프라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날 시위 현장에 배치된 한 경찰이 일부 시위대로부터 "너 중국인이냐"는 터무니없는 모욕을 당하는 영상이 SNS에 퍼졌다. 온라인 공간은 순식간에 해당 경찰관에 대한 신상 털기와 조롱성 게시물로 뒤덮였다. 참다못한 경찰관의 가족은 현재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잠실 개표소 앞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폭력과 충돌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는 취재진 폭행 사건이 발생했고, 경기장을 이용해야 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출입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도 벌어졌다. 선거에 대한 의혹 제기와 항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장되는 권리지만 취재진과 공무원 등을 향한 폭력과 인신공격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