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를 의심하며 선거관리위원회를 저격한 래퍼가 정작 대한민국 현대사 최대의 부정선거 책임자를 '건국의 상징'으로 소환했다. 래퍼 비와이(이병윤, 32)의 힙합정신은 저항인가 아니면 스스로 충돌하는 역사인식일까.
2024년 3월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9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를 듣고 있다(왼쪽). 래퍼 비와이. ⓒ연합뉴스
최근 래퍼 비와이가 발표한 노래 가사와 행보를 두고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힙합의 날 선 저항과 소신으로 포장됐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양립할 수 없는 가치관이 한 데 섞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와이는 선관위를 향해서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정작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 부정선거의 책임자로 평가받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삶의 롤모델로 내세우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와이는 5월8일 공개한 신곡 '사우스사이드 프리스타일 (SOUTHSIDE FREESTYLE)' 도입부에 "생명의 소식이요, 자유의 소식입니다"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42년 VOA 연설 음성을 넣었다. 가사엔 '멸공(공산주의를 멸하자)'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래퍼 비와이가 유튜브 채널 'SPNS TV'에서 공개된 '자발적으로 팔자 꼬는 래퍼 (박거손, ㅁ공)' 제목의 영상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SPNS TV'
이후 비와이는 6월3일 유튜브 채널 'SPNS TV'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샘플링한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비와이는 "이 전 대통령도 공과 과가 있다. 나는 그 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며 "나는 내 삶을 다시 건설해야 하고, 그 모든 메타포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이승만"이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대한민국 건국의 기틀을 잡고 공산주의를 막아낸 이승만의 공로를 존경하고 내 삶의 상징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비와이는 지난 3월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12' 세미파이널에서 공개한 권우선 피처링곡 가사 중 "싹 다 까보면 놀라겠지. 그 급은 마치 선구안 위"라는 가사로 선관위를 저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이후 정식 음원에서는 해당 가사를 묵음 처리했다.
래퍼 비와이는 6월5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뷰티불너드'의 '선관위 관련 소신 발언할게 있다는 애국 보수 비와이' 영상에 출연했다. ⓒ유튜브 채널 '뷰티불너드'
비와이는 이후에도 선관위를 둘러싼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비와이는 6월5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뷰티불너드'의 '선관위 관련 소신 발언할게 있다는 애국 보수 비와이' 영상에 출연해 선관위를 향한 생각을 밝혔다.
비와이는 "선관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기관이다. 선거 관련해 말이 많지만 (특정 사안과 관련해선) 사실로 밝혀진 것들도 있다"며 "이에 대해 얘기하면 정치적이라고 프레임 씌우기 좋은데 이게 왜 정치적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중이 의심하는 것 자체가 해소돼야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음모론자로 모는 흐름이 있다"며 "그럼 의심도 하면 안 되나?"라고 반문했다.
이 지점에서 비와이의 역사 인식은 모순에 직면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부정선거는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3·15 부정선거'다. 당시 자유당 집권 세력은 장기집권을 획책하며 투표와 개표를 비롯한 선거의 전 과정을 전방위적으로 조작했고, 그 결과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하는 초유의 부정선거를 치렀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3·15 의거와 4·19 혁명을 일으켰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독재 정권은 시민들의 저항 앞에 무너졌다.
이후 정치권은 국가 권력이 선거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선거 사무는 행정기관 산하 선거위원회가 담당했지만, 3·15 부정선거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바탕으로 1960년 6월 15일 제2공화국 헌법 개정을 통해 독립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됐다.
2024년 3월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9주년 기념행사에서 황교안 당시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와이는 2016년 엠넷(Mnet)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5' 우승을 계기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포에버(Forever)', '데이 데이(Day Day)' 등 곡으로 인기를 끌며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래퍼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비와이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삼아온 래퍼다. 그의 작품 곳곳에는 하나님과 복음,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있으며, 신앙은 그의 음악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로 자리해 왔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표적인 기독교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접점도 거론된다. 특히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온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제12대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낸 점은 이러한 연결고리에 더욱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부정선거를 경계한다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뒤흔든 대표적 부정선거 책임자를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을 낳는다. 창작자가 모순된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 또한 창작의 자유일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이 공적인 역사나 민주주의의 제도를 건드리는 순간 대중의 날카로운 검증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