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방선거 막판 전국을 돌며 국민의힘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그 효과가 대구·경북 등 전통적 보수 강세 지역에 국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각종 선거 판세를 뒤흔들었던 과거 명성과 비교하면 영향력이 크게 축소됐음이 이번에 확인된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일 대구 달성군 비슬초등학교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정치권 분석을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 기간 대구·충북·충남·부산·강원 등을 찾아 국민의힘 후보 지원 유세를 펼쳤지만 애초 예상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대구시장 선거에서 추경호 후보가 김부겸 후보를 꺾고,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박완수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는 데 보탬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화력 지원에 나섰던 충북·충남·부산·강원에서는 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승리하며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에 제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찾아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와 함께 시민들을 만나며 첫 현장 지원에 나섰다. 2017년 국정 농단 사태로 파면된 이후 무려 9년 만에 재개한 본격 정치 행보였다.
5월25일에는 충북 옥천에 있는 고 육영수 여사 생가 방문 뒤 충남 공주와 대전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들의 유세를 지원했고, 27일에는 경남 진주·울산·부산 지역을 찾았다.
5월28과 5월31일 이틀 동안에는 강원과 원주, 횡성, 대구 서문시장, 수성못 등을 잇달아 방문하며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지원을 펼쳤다.
박 전 대통령은 유세를 다닐 때마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춰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발언들을 내놓기도 했다. 원주를 찾았을 때는 "아버지께서 군에 계실 때 양구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 (강원도에) 남다른 애정을 느낀다"고 말했고, 울산에서는 "울산은 아버지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결과물이라는 점을 올 때마다 느낀다"고 언급했다.
경북 문경에서는 "아버지가 (교사 재직 시절) 하숙하며 거처한 청운각을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문경 시민도 뵐 겸 이렇게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다만 이러한 광폭 지원 행보가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뒀는지를 두고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 지역을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고, 가장 치열한 격전지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부산에서도 국민의힘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박민식 부산 북구갑 후보와 손을 맞잡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했고,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 역시 한동훈 무소속 후보에게 넘어가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28일 경분 문경시 청운각에 방문해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청운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하숙한 곳이다. ⓒ연합뉴스
충북·충남·강원에서의 패배와 함께 부산에서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면서,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대구·경북에만 한정돼 있다는 점이 이번 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보수 강세 지역이면서도 경북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유권자가 많은 부산에서 '박근혜 효과'가 과거만 못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박 전 대통령의 유세 일정에서 수도권 지역이 제외된 점 역시 눈길을 끈다. 수도권은 중도층 비중이 높은 지역인 만큼,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일부 강성 보수층이나 박정희 시대에 향수를 가진 세대를 결집시키는 데에는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중도층 확장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도중 괴한에게 커터칼 피습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식을 되찾자마자 가장 먼저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된다. 당시 열세로 평가받던 충청 민심이 이에 크게 반응하며 결국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20년이 흘러 지금 74세가 된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서는 모습을 처음 선보였다. 처음 탄핵 당한 대통령이었으니 처음 전국 유세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2028년 총선에서도 76세가 된 박 전 대통령이 또 다시 선거 현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