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은 앞다퉈 '성평등'을 이야기한다. 공약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성평등 공약의 상당수는 돌봄과 임신·출산 지원에 집중돼 있다. 물론 돌봄과 출산 지원은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성평등이 곧 출산과 육아 지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15개 정당의 정책을 살펴보고 있다. AI 합성 이미지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이하, 성인지넷)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성인지공약 분석 결과는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성인지넷은 정당 정책과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자 공약을 대상으로 성평등 의제를 분석해 지난 5월28일 결과를 공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시된 15개 정당 정책을 분석한 결과, 총 16개 지표 중 성평등 의제 관련 공약은 여성의당이 15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의당(12개), 진보당·노동당(각 10개), 기본소득당·더불어민주당(각 5개), 녹색당(4개), 개혁신당(3개), 국민의힘·조국혁신당(각 2개), 사회민주당·국민연합·대한국민당(각 1개)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공화당과 자유통일당은 성평등 관련 공약이 전혀 없었다.
가장 많이 다룬 성평등 의제는 돌봄·난임·출산 지원
눈길을 끈 것은 공약의 양보다 내용이었다. 15개 정당이 가장 많이 다룬 성평등 의제는 돌봄 지원과 난임·출산 지원이었다.
반면 정치 참여 확대, 경제적 대표성 강화, 직장 내 성차별 개선 등 여성의 사회적 권한 확대와 관련된 의제는 일부 정당에서만 제한돼 있었다.
특히 정당 정책 가운데 가장 찾아보기 어려웠던 성평등 의제는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적 괴롭힘 근절'과 '성매매 여성 피해 구제 및 강력한 수요 차단 정책 추진'이었다. 이들 정책은 여성의당에서만 확인됐다.
성인지넷은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 특성과 이와 관련한 성역할 지원에 정책이 집중되고 있다"며 "남성 참여 중심인 정치·경제 영역의 경우 성평등 전담부서 설치와 성별임금격차 해소 관련 의제를 제외하면 1~3개 정당에서만 관련 정책이 나타났고, 대부분 정당의 정책에서는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성평등 의제 공약 찾아볼 수 없는 정당
성평등 의제를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정당도 있었다. 공화당과 자유통일당은 성평등 관련 공약이 전무했다. 오히려 할당제 폐지, 성평등가족부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 등 성평등 정책에 반대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16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공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전체 후보 53명 가운데 28명(52.8%)이 돌봄 지원 공약을 제시했다.
경력단절 예방과 여성 경제활동 지원, 임신·출산 및 난임 지원 공약은 각각 10명(18.9%)의 후보에게서 확인됐다.
반면 정치 영역의 성평등 공약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등 성주류화 및 성평등 정책 강화 공약을 제시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는 전체 53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없었다.
후보별로 보면 전체 53명 가운데 6명(11.3%)만이 5개 이상의 성평등 의제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가장 많은 공약을 내건 후보는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한 유지혜 후보(여성의당)로, 총 10개의 성평등 의제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이어 경기도지사 선거의 홍성규 진보당 후보가 8개를 내걸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종욱 진보당 후보와 강은미 정의당 후보는 각각 6개의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성평등 의제 관련 공약 단 한 건도 내놓지 않은 후보들
반면 전체 후보의 22.6%에 해당하는 12명은 성평등 의제 관련 공약을 단 한 건도 내놓지 않았다. 이 가운데는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강원도지사 후보, 양정우 국민의힘 전북도지사 후보, 오중기 더불어민주당 경북도지사 후보,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지사 후보 등 주요 정당 후보들도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한 민형배 후보가 5개의 성평등 의제 관련 공약을 제시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3개 이하에 그쳤다.
성인지넷은 "성평등 공약은 돌봄에 편중되고 여성에 대한 지원은 재생산 역할에 한정되며 변혁적인 성평등을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