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는 얼마나 큰 물결이 밀려올지,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네트워크 효과로 인한 승자독식이 예상되는 이 시장에서, 여전히 우리의 성공 방정식은 유효한 것일까?”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하나금융그룹 임직원들에게 던진 메시지다.
최근 하나금융그룹이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무려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면서, 함 회장의 이 묵직한 화두가 구체적 형태로 나타났다.
함 회장이 하나금융그룹의 당면 과제 가운데 하나인 높은 이자수익 의존도를 타개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금융권이 자주 사용하는 비은행 금융사 M&A(인수합병) 문법을 깨고, 미래 금융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디지털 금융'으로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구체화 해 나가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하나은행의 두나무 지분 6.55% 인수는 단순히 가상자산 거래소에 투자한다는 의미를 넘어, 금리 하락기 진입과 가계대출 규제 강화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새로운 비이자수익 창출원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금융의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 1조 원 규모 ‘현금 딜’, 보험 M&A 대신 택한 효율적 우회로
최근 하나금융그룹의 핵심 계열사 하나은행은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보통주 228만4천 주를 약 1조33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취득 지분율은 6.55%로, 송치형 두나무 회장(약 26%), 김형년 부회장(약 13%), 한화투자증권(추가 취득 반영 시 9.84%), 우리기술투자(약 7%)에 이어 단숨에 5대 주주에 오르는 구조다.
취득 예정일은 공시 기준으로 다음 달 15일로 제시됐다. 2분기 말에서 3분기 초 사이에는 연결 기준 지분법 평가 대상이 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인수대금은 전액 현금으로 치러진다. 지난해 말 기준 하나은행 자기자본의 약 2.78% 수준으로, 빚을 내 기업을 사는 소위 ‘레버리지 M&A’가 아닌 막강한 자본력을 동원한 ‘현금 딜’인 셈이다.
이러한 결정의 이면에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장을 향한 함 회장의 치열한 고민이 자리 잡고 있다. 2026년 1분기 기준 하나금융의 비은행부문 실적 기여도는 18%로, KB금융(43%), 신한금융(34.5%), 우리금융(23.5%) 등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시장에서 예비손해보험, KDB생명,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등이 하나금융의 잠재 매물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지만,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하나금융그룹의 눈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그룹은 끊임없이 시장에 나와있는, 혹은 나올 예정인 여러 보험사들의 원매자로 거론되면서도 실제 거래에 참가하지는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함 회장은 리스크 손질과 막대한 자본 투입이 불가피한 부실 보험사 인수 대신, 자기자본의 3% 안팎을 디지털·핀테크 생태계의 핵심 허브에 직접 투자한다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 셈이다.
◆ 네이버페이-업비트 거대 플랫폼 벨트 탑승, 빅테크 생태계로 직진
금융권에서 이번 지분 인수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핵심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네이버라는 거대 IT 플랫폼과의 연결성, 전통 거대 금융그룹과 가상자산 업계 사이 흔치 않은 ‘전략적 동맹’이라는 점이다.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는 2025년 말 각자 이사회를 열고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결합하는 안을 의결했다. 합의된 교환 비율은 ‘네이버파이낸셜 1주 대 두나무 2.54주’다.
주식교환을 위한 임시주총은 기존에 5월22일로 예고됐었지만 두나무 측이 8월18일로 연기한다고 공시하면서 일정이 다소 늦춰졌다. 하지만 두나무가 2026년 정기주주총회에서 네이버그룹 편입 후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는 기존 계획을 재확인하며 주식교환 안도 원안대로 추진 중이라고 밝힌 만큼, IT업계에서는 ‘간편결제 1위 기업’과 ‘가상자산 거래소 1위 기업’의 결합이라는 핀테크 공룡의 탄생은 사실상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는 앞으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블록체인 기반 결제 및 송금, 디지털 증권(STO) 등으로 협력 범위를 넓혀 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입장에서는 이번 투자를 통해 앞으로 구축될 ‘네이버페이-업비트-블록체인’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핀테크 플랫폼 벨트에 장외의 관망자가 아니라 주요 투자자로 올라타게 된 셈이다.
◆ 글로벌 강점과 블록체인의 만남, 해외송금 패러다임 바꾼다
이번 투자의 기저에는 하나금융의 기존 핵심 경쟁력과 두나무의 기술력을 결합한다는 구체적 시너지 계산도 깔려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전통적으로 기업금융(CB)과 해외송금 부문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여기에 두나무의 자체 블록체인 기술을 얹어 글로벌 지급결제 시장의 혁신을 꾀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하나금융은 올해 2월 기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체계의 외화 송금 서비스를 두나무의 자체 블록체인인 ‘기와체인’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 검증(PoC)을 마쳤다.
이어 4월에는 포스코인터내셔널, 두나무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및 기업 간 자금이동(B2B)'을 위한 3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실제 트랜잭션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세 회사는 기존 스위프트(SWIFT) 망을 거치며 발생했던 느린 속도와 수수료 문제를 블록체인으로 개선하는 이 모델이 안착한다면 기업금융과 글로벌 결제 영역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남아있는 규제 변수, 전략적 성과의 전제 조건
다만 1조 원의 전략적 투자가 온전한 결실을 맺기까지는 짚어봐야 할 변수도 적지 않다. 가장 큰 과제는 자금세탁방지(AML)와 가상자산 시장을 둘러싼 깐깐한 규제 환경이다.
당장 국내 금융당국의 잣대가 한층 엄격해지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2026년 자금세탁방지 주요 업무계획'에서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 증가와 범죄자금 은닉 속도의 가속화를 핵심 리스크로 지목하고, 이에 대한 감독과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역시 2026년 업무계획을 통해 가상자산사업자(VASP)에 대한 강도 높은 현장점검과 제재 강화를 예고하면서, 스테이블코인 및 디파이(DeFi) 등 신종 디지털금융 영역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조달방지(AML/CFT) 규율체계 정비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가상자산 규제는 이용자 보호, 시장 건전성, AML 강화를 중심으로 더 촘촘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가상자산 추적 도구 개발 기업 TRM랩스는 '2025/26 글로벌 가상자산 정책 보고서'를 통해 2025~2026년 디지털자산 규제 기조를 두고 ‘이용자 보호, 시장 건전성, 금융범죄(AML/CFT) 대응을 위한 포괄적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 등으로 분석했다.
글로벌 웹3 보안 기업 써틱 또한 '2026 디지털자산 규제 현황' 보고서에서 미국, 유럽연합(EU), 홍콩,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국가에서 디지털자산 및 거래소 라이선스 제도, 스테이블코인 규제, 트래블룰 이행 의무 등이 본격 시행되면서 산업이 전면적인 컴플라이언스 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