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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희화화해 온 래퍼 리치 이기(이민서)의 행적이 논란으로 번지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에 맞춰 예정됐던 그의 첫 단독 공연이 결국 취소됐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이어져온 '고인 조롱 문화'를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방치해 둠으로써 사회 전체로 '혐오'가 독버섯처럼 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프 생각]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노무현 혐오, 미국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조롱에 어떻게 대처하나
래퍼 리치 이기(왼쪽),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6주기 추도식. ⓒSNS,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를 앞두고 오는 23일 예정됐던 래퍼 리치 이기의 공연이 결국 취소됐다. 그는 그동안 음원과 SNS를 통해 '리치 이기는 노무현처럼 점프', '뭐했노 이기’ 같은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극우 커뮤니티 문화와 고인 희화화를 결합한 음원을 공개해 왔다. 특히 이번 공연은 서거일을 연상시키는 5만2300원으로 티켓 가격을 책정했다. 사회적 비판이 일었고 결국 그의 공연은 취소됐다. 이후 그는 지난 18일 SNS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말만으로 고인을 모독하는 행위들을 용납할 수 있느냐"라는 근원적 질문이 제기된다. 실제 일각에서는 공인을 향한 풍자는 민주사회에서 허용되어야 한다며 문제 제기 자체를 검열이나 정치적 압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책임과 함께 존재하는 권리다. 특히 대상이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이며, 그 죽음의 방식까지 조롱의 재료로 소비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반론이 나온다. 이는 정치적 비판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죽음 자체를 희화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조롱 문화는 단순한 인터넷 밈(Meme)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일부 방송이나 기사에서 드러나는 사례는 오히려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유튜브,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그의 서거 방식과 지역 비하 표현, 합성 이미지와 음성, 게임화된 콘텐츠들이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소비돼 왔다. 문제는 이것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비판이라기보다, 조롱 그 자체를 놀이처럼 즐기는 문화로 고착됐다는 데 있다. 하나의 유행어와 밈으로 소비되면서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와 윤리 의식마저 무뎌진 것이다.

[허프 생각]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노무현 혐오, 미국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조롱에 어떻게 대처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 씨가 청와대 재임과 퇴임 시 찍었던 대통령의 일상생활을 비롯한 미공개 사진 40여 점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물론 해외에도 정치인이나 역사적 인물을 희화화하는 사례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양상과 사회적 반응은 한국의 경우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 당선됐을 당시 미국 인터넷 문화 역시 수많은 패러디와 밈으로 넘쳐났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영상이 2017년 11월 유튜버 'Maestro Ziikos'가 공개한 'Havana cover by Donald Trump'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편집해 미국 가수 카밀라 카베요의 대표곡 'Havana'처럼 들리도록 재구성한 이 영상은 20일 기준 조회수 약 1억3천만 회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내용 자체는 조롱보다는 풍자와 유희에 가까웠다. 트럼프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더라도 노골적인 인신 모독이나 죽음을 희화화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고인에 대한 태도는 이보다 더욱 민감하게 다뤄진다. 미국에서는 과거 흑인인권운동가이자 종교인이던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를 조롱하거나 왜곡한 AI 영상들이 인터넷에 퍼진 적이 있었다.

이후 미국 언론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에 따르면 오픈AI는 유족 측의 항의를 수용해 자사 영상 생성 서비스인 소라(Sora)에서 킹 목사 관련 영상 생성을 차단했다. 당시 매체에 따르면 오픈AI는 "역사적 인물의 AI 재현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존재한다"면서도 "그 초상과 기억이 어떻게 소비될지는 궁극적으로 유족과 사회적 윤리의 영역 안에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되,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무제한적으로 침해할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래퍼의 부적절한 언행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은 인터넷에서 놀이처럼 소비되고 있으며, 혐오와 조롱은 여전히 새로운 콘텐트로 재생산되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판과 모독은 분명히 다르다. 정책과 행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행위는 풍자라기보다 잔혹한 유희에 가깝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역사적으로 훨씬 큰 비난의 대상이 되는 친일 인물들조차 오늘날 인터넷 문화 속에서 이 정도로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어느 순간 정치적 논쟁을 넘어 하나의 ‘밈 코드’로 변질됐고,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선마저 희미해졌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핵심 가치이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존엄을 파괴하는 순간 사회는 결국 혐오를 놀이처럼 소비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특정 인물 한 명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죽음마저 웃음거리로 삼는 문화는 결국 인륜의 붕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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