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향한 모독은 17년째 끝나지 않고 있다. 오는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을 앞두고 일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인을 조롱하는 움직임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프로필 사진을 거꾸로 올리는 사람. AI 이미지.
그동안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에서는 고인의 비하하려 서거일을 ‘중력절’이라 부르며 SNS 프로필 사진을 일부러 거꾸로 설정하는 행동이 반복돼 왔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번 주 토요일(23일) 주변 사람들 SNS 프로필 사진을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는 "이런 사람들은 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극우 커뮤니티식 조롱 문화는 방송과 콘텐츠 업계에서도 반복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일부 방송 영상에도 자막 등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나 은어 사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업 홍보와 마케팅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이어졌다. 프로야구 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공식 유튜브 채널 역시 고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TV가 11일 공개한 ‘[HOTDUG] 박세웅의 호투에 응답하는 득점’ 영상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문구가 자막으로 삽입돼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 채널 'Giants TV'
지난 11일 공개된 '자이언츠TV' 유튜브 채널 영상에는 롯데 자이언트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 영상이 올라왔다. 광주 출신의 롯데 선수 노진혁 선수의 뒷모습에 '무한 박수'라는 자막이 삽입됐는데 유니폼에 적힌 '노'라는 글자와 자막이 겹치면서 극우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고인 비하 표현을 연상케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대다수 시민들이 이런 표현의 맥락을 모른 채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단어와 문구가 특정 고인에 대한 혐오의 은어로 소비되는 현실에 씁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롯데 자이언츠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해당 자막을 제작한 외주 업체 직원을 퇴사 처리했다고 밝혔다. 노무현재단은 직접 부산 사직구장을 찾아 강하게 항의하며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들이 2024년 5월23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첫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사위 곽상언씨. ⓒ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결국 고인을 향한 조롱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곽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 전 대통령의 손주들인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외할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끔찍한 조롱과 혐오물을 먼저 마주하게 되는 현실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며 "이 비극이 17년 전에 끝난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난 17년 동안 매일같이 새롭게 벌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고통"이라고 밝혔다.
곽 의원 부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혐오 게시물에 대해 사자명예훼손죄로 형사고소장을 제출하고 일베 등 주요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상대로 게시글 삭제 및 방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하기로 했다.
특정 인물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로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을 17년 동안 반복적으로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인가라는 비판도 나온다. 혐오 표현이 마치 유행어처럼 퍼져가는 사이 남겨진 유가족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고인에 대한 조롱이나 희화화 표현을 직접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 유포에 한해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행 모욕죄 역시 일반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보호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고인에 대한 단순 모욕이나 희화화 표현만으로는 형사처벌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고인을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표현이 반복돼도 법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조롱 문제는 특정 정치인을 넘어 현대사의 비극과 희생자들을 희화화하는 방식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18일 민주화운동 기념식 당일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유혈 진압했던 계엄군의 탱크를 연상시키는 이른바 '탱크데이' 표현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전두환과 계엄군의 탱크를 결합한 '전땅크'라는 표현을 밈처럼 소비하며 5·18의 아픔을 희화화해왔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또 스타벅스가 사용했던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 역시 논란이 됐다. 해당 표현은 경찰 고문 끝에 숨진 고(故) 박종철 열사 사건 당시 수사기관이 내놓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은폐성 발표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을 마케팅 문구처럼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이튿날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타벅스를 불매하겠다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했던 고인 조롱과 모욕의 표현이 기업 홍보와 마케팅 문구에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단순한 실수나 우연으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기업들은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역사적 비극과 혐오 표현에 대해 최소한의 검수조차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업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