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정부 주도의 생산적·포용적 금융 정책을 올해 핵심 경영 위험 요인으로 지목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십조 원 규모의 정책 펀드 출자 등 구체적 수치까지 명시하며, 이러한 정책이 상업적 논리에 반하는 비효율적 자산 배분과 자산 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된 KB금융지주 2025년 연간보고서. 국민성장펀드의 이름을 적시하며 재무건전성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SEC 공시 보고서 중 갈무리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5회계연도 연간보고서(20-F)의 '투자 위험 요소(Risk Factors)' 항목에 이 같은 내용을 새롭게 추가했다. 미국 현지 거래소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하지 않은 4대 금융지주 중 하나금융은 제외됐다.
◆ 국가성장펀드·새도약펀드 등 구체적 자금 투입 규모 명시
이번 미국 SEC 공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금융지주들이 정부 정책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매우 구체적 수치로 적시했다는 점이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은 2025년 12월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 투자를 위해 150조 원 규모로 출범시킨 '국가성장펀드(National Growth Fund)'를 언급하며, 향후 5년간 각각 10조 원을 해당 펀드에 출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이에 더해 '포용적 금융'을 촉진하기 위해 향후 5년간 최대 7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최근 발표 계획도 리스크 요인으로 함께 명시했다.
신한금융의 경우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펀드 참여를 언급했다. 2025년 10월 정부가 7년 이상 연체된 5천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소상공인 무담보((unsecured) 채무를 매입해 탕감하거나 재조정하기 위해 출범시켰다며 '새도약펀드(New Leap Fund)'를 거론한 것이다. 은행권이 총 36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신한은행이 12월에 497억 원을 출자했다는 사실을 보고서에 담았다.
◆ "순수 상업적 결정과 괴리", 연체율 상승 및 수익성 악화 경고
3개 금융지주는 공통으로 정부의 이러한 대출 장려 및 금융 지원 정책이 은행의 본원적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한금융은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내부 신용평가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정부 이니셔티브에 참여함으로써 평소라면 내어주지 않았을 중소기업이나 조건으로 대출을 실행하게 될 수 있다"며 "순수하게 상업적인 결정에 기반했을 때와 비교해 리스크-보상 관점에서 대출 포트폴리오의 '최적화되지 않은 배분(suboptimal allocation)'을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KB금융 역시 "정책 자금의 존재 자체가 평소라면 대출하지 않았을 특정 부문이나 방식으로 대출을 실행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의도치 않은 비용이나 손실 발생, 나아가 연체율 증가와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금융은 타사들과 같은 맥락의 건전성 우려에 더해 "가계 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사업 모델을 다각화하고 중저소득층의 금리 부담을 낮춰주라는 정부의 압박이 순이자마진(NIM)에 추가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며 직접적으로 수익성 훼손 가능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