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이 놓인 교실에 또다시 민원의 전화벨이 울린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교실에서 무너진 건 교권만이 아니라 교육을 향한 신뢰였다. 무너진 건 인간을 향한 신뢰였다.
교실 자료사진 (기사와 상관 없는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왜 스승의 날 선물을 돌려보냈느냐"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 실제 이런 내용의 학부모 민원이 접수됐다. 해당 학부모는 2023년부터 약 2년 동안 생활기록부 정정 요구, 수업 계획서 공개 요청, 담임교사 교체 요구 등 학교 홈페이지와 전화, 방문을 통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다.
이 민원 대응을 맡았던 교감은 우울증과 안면마비 증세를 겪었고, 결국 학부모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법원은 반복적이고 과도한 민원이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3천만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학생을 가르치는 공간이어야 할 교실이 어느새 민원 대응 창구로 변하고 있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너진 신뢰, 교직을 떠나고 싶은 교사들
교권 침해 문제는 2023년 서울서이초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사회 전면으로 떠올랐다. 당시 해당 학교의 20대 초임 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 생전 학부모 민원과 생활지도 부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반복되는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 부담 속에서 교사들이 교육활동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며 교권 침해 논의가 본격화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제45회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달 27일부터 5일까지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8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는 교사들이 느끼는 가장 큰 좌절이 무너진 신뢰와 부족한 보호 장치에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교사들이 현장에서 가장 큰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으로는 '학생·학부모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교권이 침해될 때'라는 응답이 67.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교직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민원 노출'이 28.9%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교육에 대한 고민보다 민원 대응과 법적 분쟁에 대한 불안이 먼저 자리 잡으면서 교실 안 신뢰의 균열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사들이 체감하는 악성 민원의 현실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교총이 발표한 '2025년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실적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438건 가운데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199건(45.4%)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교권 침해의 상당수가 더 이상 교실 안 학생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국회는 지난 7일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단 한 차례의 무고성 고소나 협박 역시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사는 교육활동보호위원회 결정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학부모가 결과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가 보완되고는 있지만, 악성 민원과 법적 분쟁에 대한 현장의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원을 피하는 방어적인 교육
스승의날 카네이션 자료 사진. ⓒ연합뉴스
문제는 반복되는 악성 민원이 교사들의 교육 태도와 방식 전반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교사가 수업시간에 잠든 학생을 깨웠다가 "왜 우리 아이를 깨웠느냐"는 학부모 민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 생활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조차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결국 교사들은 학생에게 지금 어떤 지도가 필요한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떤 행동이 민원으로 이어지지 않을지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그 결과 생활지도는 점점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보다 문제를 만들지 않는 교육이 우선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 역시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아이들은 이런 교실에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
최근에는 수업 중 몰래 녹음된 내용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될 가능성을 두고 교육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학부모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부담이 이미 큰 상황에서 교사들은 자신의 말과 생활지도가 언제든 녹음돼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압박까지 떠안게 된다. 교실이 서로를 감시하고 증거를 남겨야 하는 공간으로 변할수록 신뢰는 약해지고 교육은 위축된다.
불신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배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교권과 학생 인권을 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치로 바라본다. 교권이 강화되면 학생 인권이 약화되고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 교권이 무너진다는 식의 이분법적 시선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서로를 억누르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함께 필요한 조건에 가깝다. 결국 교권 보호란 교사에게 일방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가 아니라, 교사가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진공 상태에서 자라지 않는다. 가정과 학교라는 환경 속에서 관계를 배우고 성장한다. 교육학자 유리 브론펜브레너는 아이를 둘러싼 가정과 학교가 건강하게 연결되는 '중간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아이들의 성장에는 학교와 가정 사이의 신뢰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학부모의 의견 개진과 학교와의 소통은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과정이지만, 반복적인 항의와 위협, 사실관계와 무관한 신고까지 이어질 때 교실은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경계하는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불신이 깊어질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아이들이 느끼는 교실의 분위기와 관계다. 교사가 위축된 교실에서는 학생 역시 자유롭게 질문하고 배우기 어렵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교실이 민원실이 되어버린다면 아이들의 배움과 교육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질지도 모른다.
결국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더 강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서로를 감시와 의심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교육의 공동 주체로 다시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