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정책 기조가 ‘포용금융’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박창훈 신한카드 대표이사 사장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20여 년 전 ‘카드대란’ 당시 설립된 배드뱅크를 ‘약탈금융’으로 강도 높게 비판한 가운데, 해당 배드뱅크의 최대주주인 신한카드가 정부의 중저신용자 구제, 포용금융이라는 정책적 압박의 한가운데 서게 됐기 때문이다.
수익성 악화로 뼈를 깎는 위기경영을 선언한 박 사장으로서는 실적 방어와 상생 금융 확대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박창훈 신한카드 대표이사 사장. ⓒ신한카드
◆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 드라이브, 그 중심에 서게 된 신한카드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금융정책의 두 가지 축을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으로 명시해왔다.
지금까지 정책의 무게추는 둘 가운데 증시 부양 등을 위한 ‘생산적 금융’에 쏠려있었다. 하지만 최근 금융이 ‘치밀하게 방치된 구조적 모순’을 설계했다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을 기점으로 정부의 금융권 압박의 초점이 포용금융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의 이와 같은 태도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포용금융은 금융기관의 의무"라며 중·저신용자에 대한 포용금융 이행을 평가해 평가가 저조하면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12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를 겨냥해 "아직도 이런 원시적 ‘약탈 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의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록수는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당시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융사들이 합작해 설립한 기관이다. 문제는 신한카드가 이 상록수의 지분 30%를 보유한 최대주주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신한카드는 상록수가 보유한 장기연체채권 중 자사 몫 전액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새도약기금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하며 즉각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에 화답했다.
하지만 과거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조성했던 배드뱅크가 20년이 흐른 뒤 약탈금융의 상징으로 지목되고, 그 중심에 신한카드가 서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박 대표에게는 예상치 못한 악재다.
신한금융그룹 전체적으로도 포용금융 관련 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는 점 역시 박 대표와 신한카드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5대 금융지주가 약속한 70조 원 규모의 포용금융 가운데 15조 원을 책임지기로 했다. 신한카드가 일반 소비자 접점이 매우 높은 계열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살피면 신한카드는 포용금융을 주도해야 하는 창구이자 과거 사태의 피고석에 함께 앉게 된 모순적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
◆ '책임경영' 내세운 박창훈, 업황 악화 속 실적 방어 갈 길 급한데 커지는 압박
신한카드가 처한 이율배반적 상황은 현재의 팍팍한 경영 여건과 맞물려 박창훈 사장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외부의 상생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한카드는 이미 내부적으로 강도 높은 '위기경영' 체제에 돌입해 있기 때문이다.
신한카드의 2026년 1분기 순이익은 1154억 원으로 2025년 1분기보다 14.9% 감소했다. 전체 결제액 규모는 늘어나고 있으나,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조달비용 상승과 대손비용 증가가 직접적 타격을 입혔다. 연체율 또한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2025년 말 1.18%에서 올해 1부기 말 1.3%로 상승하면서 건전성 관리 역시 중요한 경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업황 역시 좋지 않다. 신한카드의 실적 부진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카드론 규제 등 카드업계 전반에 깔린 구조적인 수익성 악화 흐름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박 사장은 ‘책임경영’을 전면으로 꺼내들면서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박 사장은 최근 사내 메일을 통해 실적 부진과 더불어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경영진의 과오"로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또한 실적 목표 미달 시 경영진의 성과급 반납을 약속하고, 임원실 축소 등 특혜 재검토를 지시하는 등 자발적 '허리띠 졸라매기'도 선언했다.
문제는 박 대표와 신한카드가 수익성 개선을 기치로 내걸고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 시점에, 정부의 포용금융 기조가 또 다른 비용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원리대로라면 여전채 등 조달금리 상승에 따라 카드론이나 장기카드대출의 금리도 올라야 하지만, 정부의 정책적 명분에 실제 대출 이자를 올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이자를 더 많이 받는’ 금융업의 구조를 지적해왔다는 것을 살피면,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늘려야 하는데 이들에게 높은 이자를 받기는 어려워지는, 수익성 측면에서 모순적 상황에 봉착한 셈이다.
신한카드는 이미 중금리 대출 취급 확대, 맞춤형 자체 채무조정 확대, 데이터 소외계층 지원 등을 통해 정책에 부응하는 ‘포용금융 모범생’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여신금융권에 사잇돌 대출 취급을 허용함에 따라 주요 카드사들과 함께 하반기 관련 상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어, 포용금융에 따른 비용 부담은 갈수록 누적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선까지 손해를 감수하며 정책적 목표에 동참하고, 또 어느 선에서 기업 본연의 수익성을 방어할 것인지 박 사장의 정교한 ‘운용의 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셈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민생지원금 지급 등 카드업계가 포용적 금융과 관련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실적 측면에서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정부 정책의 목표와 뜻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만큼, 포용금융을 단순히 실적 잣대로만 접근하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