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는 지난 2일 방송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 출연해 두 번의 결혼 생활 당시 아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에이전시 계약에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다"며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연예계는 지금보다 개인 활동과 사생활에 대한 통제가 강한 구조로 운영되며, 일부 계약에서는 활동 조건과 관련해 제약이 따르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복희는 "남편이나 자신이 피임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다"며 "네 차례 중절 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종교인이 된 이후 가장 많이 회개한 부분"이라며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반성했다.
그는 항간에 떠돌았던 출산설과 관련해서는 "서른 중반 무렵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며 "산부인과 수술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복희는 1952년 6세의 어린 나이에 뮤지컬 '성탄절 선물'로 데뷔했다. 그는 1960~70년대부터 활동하며 한국 대중음악과 공연예술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여러분', '나는 행복합니다' 등의 곡을 통해 감정과 메시지를 담은 음악 스타일을 대중화했다.
또한 한국 뮤지컬 1세대 대표 주자로서 대형 뮤지컬 무대에 참여하며 노래와 연기, 퍼포먼스를 결합한 공연 형식을 국내에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무대 의상으로 미니스커트를 착용하며 당시 보수적이던 여성 패션에 변화를 주는 등 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