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장구인 헬멧도 잘 쓰지 않는 아이들이 이제는 자전거의 '생명줄'인 브레이크마저 떼어내고 있다. 10대 사이에서 픽시 자전거 열풍이 불면서 이들이 도로 위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위험천만한 픽시 질주는 결국 부모의 형사 입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픽시 자전거를 탄 10대 청소년들.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AI 이미지.
지난 18일 새벽 1시경, 인천 남동구 일대 도로에서 중학생 7명이 픽시 자전거를 타고 소란을 피우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떼를 지어 도로를 달리며 보행자를 위협하는 등 아슬아슬한 질주를 이어갔다. 결국 경찰은 이들 가운데 과거 여러 차례 적발된 적 있는 학생 2명의 부모를 아동복지법의 방임(아동학대)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
현행법상 18세 미만 미성년자가 적발되면 1차적으로는 보호자 통보와 경고에 그친다. 그러나 상습 위반 시 학생은 즉결심판에, 부모는 입건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픽시 자전거가 법적으로 엄연한 차에 해당하며, 브레이크 미부착 주행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불법 운전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다.
10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픽시 열풍
픽시(Fixie)는 '픽스드 기어 바이크(Fixed Gear Bike)'의 줄임말로, 기어가 하나 뿐인 자전거를 말한다. 일반 자전거는 달리다가 페달을 멈춰도 바퀴가 계속 굴러간다. 하지만 픽시는 페달과 뒷바퀴가 체인으로 직결되어 있어 바퀴가 굴러가면 페달도 같이 회전하는 구조다. 두 발로 페달을 멈추거나 역회전시키면 바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출 수 있는데, 이에 아예 브레이크를 떼고 달리는 픽시 자전거도 많다.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픽시는 단순한 자전거가 아니라 또래 문화 속에서 멋과 소속감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거리 문화로 자리잡았다. 혼자 타기보다 5~10명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크루 문화가 강하고, 중고 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에서는 '초등학생 픽시 연합' 멤버를 모집하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아이들이 픽시에 열광하는 이유로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도 요인으로 꼽힌다. 변속기와 브레이크 케이블이 없어 외관이 매끄럽고 가벼운 데다 자전거와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가지 줄 수 있다. 여기에 프레임부터 핸들바까지 취향대로 꾸밀 수 있는 커스텀의 재미가 '나만의 자전거'를 가질 수 있다는 소유욕을 자극한다. 무게가 가벼워 들고 이동하기도 편하다.
픽시 자전거는 최소 20만 원에서 최대 수백만 원 대를 호가한다. 청소년들은 차곡차곡 용돈을 모아 입문자용으로 20~30만 원 선의 중고 제품을 구입한다. 문제는 이 중고 제품의 대다수가 브레이크가 없는 상태로 거래된다는 점이다.
픽시 자전거에 브레이크를 뗀다고?
지난 18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온·오프라인에서 유통되는 픽시 자전거의 75%가 브레이크가 없거나 하나만 장착된 '부적합' 상태였다. 길 위의 픽시 4대 중 3대가 언제든 대형 사고를 낼 수 있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실험 결과에서도 시속 20km로 주행할 경우 픽시 자전거의 제동거리는 일반 자전거보다 약 13.5배 길었다.
스키딩에 실패해 미끄러지는 청소년. ⓒ유튜브 갈무리 화면
픽시는 두 바롤 페달을 반대 방향으로 멈춰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는 '스키딩(Skidding)'으로 속도를 줄여야 한다. 이는 손아귀 힘으로 브레이크를 잡는 방식이 아니라 온몸의 근력을 동원해야 한다. 문제는 스키딩이 쉽지 않고 실패하면 더 이상의 제동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온라인에는 스키딩 도중 중심을 잃고 그대로 넘어지는 사고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속도가 붙으면 페달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회전해 중심을 잃고 넘어져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지난해 7월12일 브레이크 없는 픽시를 타던 중학생이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해 에어컨 실외기에 충돌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기준 20세 이하 청소년의 자전거 사고 건수는 전년 대비 50% 이상 급증했다.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의 위험천만한 묘기가 마치 용기나 멋처럼 포장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브레이크를 제거해야 기술이 더 잘 걸린다며, 청소년들은 누가 더 오래 미끄러지는지, 또 브레이크 없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를 두고 위험한 경쟁을 벌인다. 이처럼 집단 주행과 '노 브레이크'가 결합되면서 픽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위험한 놀이로 변질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는 불량 기구다
시민들이 MTB와 로드 자전거를 타고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자전거는 앞뒤 바퀴에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두 개의 브레이크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없을 경우 법적으로 '불량 기구'에 해당해 도로 주행 자체가 불법이다.
일부 픽시 사용자들은 “페달을 멈추면 뒷바퀴도 함께 멈추니 브레이크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위험한 착각이다. 고속 주행 중 체인이 이탈하거나 타이어가 펑크라도 나면 픽시를 멈출 수단이 완전히 사라져 무방비 상태에 노출된다. 자녀의 취미라는 이유로 이를 방치하기에는, 픽시의 무법 질주가 아이들의 생명은 물론 이웃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안전한 픽시 이용을 위해, 구매 단계부터 꼼꼼히 따져봐야 할 조건들이 있다. 우선 국가기술표준원의 안전 인증을 통과한 모델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앞뒤 브레이크가 온전히 장착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아이가 이를 임의로 제거하거나 개조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이번 기회에 안전모 착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도 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