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수상 순간이 아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연출한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객석에서 보여준 ‘신라면 뽀글이 먹방’이 전세계 시청자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글로벌 시상식 한복판에서 봉지째 라면을 끓여 먹는 이 낯선 장면은 순식간에 SNS를 타고 퍼졌다. 의도된 연출은 아니었지만 단 한 컷으로 농심의 신라면 브랜드는 막대한 글로벌 노출 효과를 얻었다.
치킨 한 마리, 컵밥 하나, 봉지 라면 한 움큼. 광고도 아닌 이 장면들이 지금 유통업계를 움직이고 있다. 예능에서 툭 던진 한마디, 시상식장에서 무심코 집어든 간식 하나가 순식간에 ‘완판 신호’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연출한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현지시각으로 16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객석에서 ‘신라면 뽀글이 먹방’을 하고 있는 모습. ⓒ인스타그램 갈무리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유명인이 언급하거나 사용한 제품들은 방송 클립과 짧은 영상, 커뮤니티 캡처로 재가공되면서 반복 노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검색량과 SNS 언급량이 급증하고 일부 매장에서는 주문 증가가 체감되는 등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치킨 연금’이다. 최민정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가 최근 예능에서 “시합 끝나면 제일 먼저 치킨을 먹는다”고 말하며 이 이야기는 다시 소환됐다. 제너시스BBQ가 선수들에게 평생 치킨을 지원하기로 한 이 ‘연금’은 이미 한 차례 화제를 모은 바 있지만 방송을 통해 한 번 더 불이 붙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주문이 늘었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광고 한 편 없이도 브랜드가 다시 살아 움직인 셈이다.
소비자가 “광고”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 효과를 더한다. 스포츠 스타의 식습관이나 일상 루틴처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브랜드는 신뢰를 얻는다. '세계선수권 2관왕' 김길리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가 최애 음식으로 언급한 컵밥 역시 마찬가지다. 오뚜기의 컵밥 제품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SNS에서 다시 회자되며 ‘김길리 효과’를 누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전통시장에서 직접 구매한 화장품이 더페이스샵의 ‘보들보들 때필링’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제품이 주목받았다.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대통령이 선택한 제품”이라는 상징성이 소비를 자극한 것이다.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누가 쓰느냐”가 “얼마나 좋으냐”를 대신한다.
이런 흐름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억지로 끼워 넣은 노출이 아니라 인물의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파급력이 커진다는 점이다. 여기에 광고 모델이 아니라 실제 인물이 자신의 경험으로 말할 때 소비자는 더 쉽게 반응한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은 방송 클립과 SNS 짧은 영상, 커뮤니티 밈으로 재생산되면서 효과가 증폭된다. 의도하지 않았기에 더 강력한, 이 역설적인 마케팅이 유통업계의 새로운 변수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