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아카데미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이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지만, 수상 소감은 음악에 가로막혀 단 10초 만에 중단됐다. 이에 2020년 영화 '기생충'으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헐리우드 로컬(지역) 축제"라고 한 발언이 다시 호출되고 있다. 아시아계 창작자들이 여전히 무대 위에서 온전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골든' 공동 작곡가 이재(왼쪽), 봉준호 영화감독 ⓒAF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케데헌'은 한국어 가사가 포함된 곡으로는 처음으로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의미 있는 순간을 기록했다.
이날 공동 작곡가 이재, 마크 소넨블릭, 곽중규, 유한, 남희동, 서정훈 등 6명이 무대에 올랐지만, 이재의 수상 소감이 끝난 직후 더블랙레이블 소속 작곡가 이유한에게 마이크가 넘어가는 순간 갑작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유한은 메모를 꺼내 소감을 전하려 했고, 공동 작사가 마크 소넨블릭도 잠시 시간을 더 달라는 몸짓을 했지만, 조명이 꺼지고 곧바로 광고 영상으로 전환됐다. 이번 케데헌 수상소감 컷오프는 팬들로 하여금 SNS에서 #케데헌컷오프 #아시아계홀대 등의 반응을 쏟아내게 했다.
가수 이재가 1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 극장(Dolby Theatre)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으로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무대에 올랐다. ⓒAFP/연합뉴스
CNN은 이번 사건을 두고 "시상식에서 가장 감격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 있었음에도, 제작진이 단 10초만 수상 소감을 허용하고 음악으로 덮은 것은 케이팝 팬들을 분노케 할 충분한 수치스러운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빌보드는 "동료의 소감이 시작되기도 전에 마이크를 가로막았다"며, 단순한 방송 사고가 아니라 아시아계 창작자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매셔블은 앞서 시상된 단편 영화상이나 촬영상 팀에는 4분 가까운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 것과 비교하며 이번 조치가 무례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은 과거 사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포브스는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서 작품상을 수상했을 당시 출연진과 제작진을 비추던 조명이 갑자기 꺼졌던 일을 언급했다. 당시 객석의 할리우드 인사들이 항의하자 조명이 다시 켜졌고 총괄 프로듀서 미키 리(이미경 CJ그룹 부회장)가 수상 소감을 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해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 시상 과정에서 두 명의 백인 배우가 아시아 배우에게 보인 태도도 다시 회자됐다. 전년도 수상자 키 호이 콴이 트로피를 건네며 인사하려 했으나, 토머스 로다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트로피만 낚아채듯 받아갔다. 로다주는 옆에 있던 다른 배우들과는 주먹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눴지만, 키 호이 콴(베트남 출신)은 무안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년도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량쯔충(양자경)이 트로피를 직접 전달하려 했으나, 엠마 스톤은 제대로 인사하지 않고 트로피를 자신의 절친 제니퍼 로렌스 쪽으로 끌어당겼다. 결과적으로 트로피는 량쯔충의 손에서 제니퍼 로렌스를 거쳐 엠마 스톤에게 전달됐다. 논란이 커지자 량쯔충은 자신의 의도였다고 해명하며 엠마 스톤과 포옹하는 사진을 공개했지만, 팬들은 미묘한 차별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번 케데헌 사건은 아시아계 창작자들이 여전히 무대 위에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오스카가 오랫동안 나이 많은 백인 남성 중심의 클럽이라는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2015년에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OscarsSoWhite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투표권을 가진 회원은 여전히 백인과 남성의 비중이 높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애넌버그 포용 이니셔티브가 202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29년부터 2024년까지 오스카 후보 중 인종·민족적 소수 집단이 차지한 비중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