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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직무 내 여성 리더 역할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계속 정비하겠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올해 여성의날 행사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임 회장 뿐 아니라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역시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리더들은 성별이 아닌 능력과 성과로 검증된 존재", "여성 리더를 넘어 신한의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며 여성 리더들을 격려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역시 그동안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Hana WAVEs)을 통해 지속적으로 여성 리더의 성장을 주문해 왔다.

진옥동의 신한금융지주에는 있는데 임종룡의 우리금융지주에는 없는 것 : 미등기 여성 임원
(왼쪽부터)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허프포스트코리아

하지만 최근 발표된 4대 금융지주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화려한 수사 이면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최소한 지주사 내에서는 악명 높은 금융권의 '유리천장'이 여전히 견고한 모습이다.

◆ 우리금융지주 여성 미등기 임원 '0명', 뼈아픈 지주사의 폐쇄성

지배구조 측면에서 가장 심각한 곳은 단연 우리금융지주다.

우리금융지주는 2025년 말 기준 9명의 미등기 임원을 두고 있었다. 이 가운데 여성 임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후 올해 초 이성욱 부사장이 임기 만료로, 전현기, 정찬호 부사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각각 퇴임하고 곽성민 부사장, 김병규, 고원명, 박연호 상무가 미등기 임원으로 신규 선임되면서 3월 17일 기준 우리금융지주의 미등기 임원은 1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핵심 자회사인 우리은행에는 상당수의 여성 임원이 활약하고 있다는 점을 살피면 지주사의 뼈아픈 폐쇄성이 더욱 부각된다.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 우리은행의 미등기임원은 모두 21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 임원은 4명이다.

통상적으로 은행 임원은 영업과 현장 관리 등 '실무 집행'에 집중하고, 지주사 임원은 M&A, 자본 배분, 인사, 브랜드 전략 등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여성이 영업 현장이나 실무 부서에서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전략과 관련된 직무에서는 소외돼 있는 셈이다.

실제로 우리금융지주에 미등기 여성 임원이 없는 근본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른 금융지주와 비교해 계열사 겸직 비율이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우리금융지주 임원 가운데 은행 임원을 겸직하고 있는 인원은 옥일진 부사장과 이정섭 상무 둘뿐이다. 타 지주의 여성 미등기 임원들이 대부분 은행 임원을 겸직하며 지주에 입성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신한은 '비교적' 양호하고 KB·하나는 턱걸이, 사외이사 성별 다양성과도 '동조화' 현상

반면 신한금융지주는 4대 금융지주 가운데 미등기 여성 임원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한다. 신한금융지주는 아직 사업보고서를 공시하지 않았지만, 2025년 3분기 보고서에 연말 임원 인사를 반영해 살펴보면 지주 미등기 임원 7명 가운데 2명(박현주 부사장, 김지온 상무)이 여성이다. 

신한금융지주는 기존 8명의 미등기 임원 중 5명을 연임시키고 2명을 신규 선임하는 내용의 2025년 연말 인사를 단행했다. 신규 선임 임원은 모두 남성이었지만 기존 여성 임원 2명이 모두 연임에 성공하면서 전체 미등기 임원 중 여성 비율은 25%에서 28.6%로 오히려 확대됐다.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간신히 '0명'을 면한 수준이다. KB금융지주는 상무 이상 미등기 임원 14명 중 단 1명만이 여성이며, 담당, 본부장, 센터장, 부장까지 합치더라도 22명 가운데 3명에 불과하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21명의 미등기 임원 중 여성이 1명에 그쳤다. 본래 2명이던 여성 임원이 모두 퇴임하고 새로 선임된 임원 가운데 1명만 여성으로 선임되면서 비율이 크게 감소했다.

눈에 띄는 점은 미등기 여성 임원 비율이 여성 사외이사 비율과 어느 정도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여성 임원 비율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높은 신한금융지주는 이달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사외이사 역시 9명 중 4명이 여성으로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최상위권의 성별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다. 

반면 미등기 여성 임원이 전무한 우리금융지주 역시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여성 사외이사 비율이 7명 중 1명으로 4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낮다.

'인과관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관관계'는 확인되는 셈이다.

◆ 자본시장법이 만든 '겉치레 다양성', 깰 수 있을까

이러한 금융권의 현실은 한국 기업 생태계 전반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기업들의 2025년 1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00대 기업 기준 여성 임원 비율은 2019년 3.8%에서 2025년 8.1%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1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증가세가 온전히 '사외이사'에 의해 견인됐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여성 사외이사는 38명에서 292명으로 7.6배나 급증했지만, 실무 책임을 지는 미등기 여성 임원은 457명에서 866명으로 두 배가 채 늘지 않았다. 그 결과 여성 임원 중 미등기 비율은 2019년 90.5%에서 2025년 71.6%로 급감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현상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이사회 성별 편중이 금지되면서 나타난 것"이라며 "규제의 직접적 타깃인 '이사회(등기임원)'에만 여성을 채워 넣으면서 정작 유리천장의 핵심인 미등기 임원 비중은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겉치레 다양성'이 만들어졌으며, 금융지주들 역시 이와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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