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2026년 3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25% 관세 인상을 위협하더니 이제는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이라는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의 호르무즈 군함 파견 요구로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5개 우방국을 직접 거명하며 "에너지 수혜국들이 전쟁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란 전쟁이 애초 계획과 달리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우방국을 끌어들이려 위협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다. 그러나 이번 군함 파견 요청은 한국을 포함해 5개국 모두 명분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 네타냐후의 ‘도박’과 ‘순교자’가 된 독재자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적이고 일방적인 침략에서 비롯됐다. 이에 미국의 군함 파견 요청을 수용한다면 자칫 침략국의 대열에 동참하게 될 수 있다.
2025년 6월, 이른바 ‘12일 전쟁’을 촉발한 이스라엘의 1차 공습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 혐의 재판과 연정 붕괴 위기라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었다. 전쟁이 그에게는 최상의 ‘국면 전환용’ 탈출구였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최근 감행된 2차 공습의 결과다. 억압적 통치로 민심을 잃어가던 이란의 독재자 알리 하메네이에게 이번 공습은 오히려 ‘외세에 맞선 순교자’라는 종교적 면죄부를 주었다.
전쟁은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기는커녕, ‘순교’의 서사를 통해 이란 내부의 민주주의 시위의 숨통을 죄었고 신정세력을 강력히 결집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 ‘용병’이 아닌 ‘동맹’의 길: 디커플링과 창의적 거절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에 필요한 생존 전략은 ‘굴복하지 않는 실용’과 ‘명분 있는 거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이 시급하다. 관세 문제는 이미 약속된 대미 투자 이행과 공급망 협력을 매개로 비즈니스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반면 파병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주권적 결정’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남의 나라 전쟁을 위해 우리 장병을 사지로 보낸다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한미 관계는 파트너십이 아닌 ‘용병 계약’으로 전락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수록 더 큰 요구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을 고려할 때 무조건적인 수용은 더 큰 요구를 부를 뿐이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16일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트럼프는 예측보다는 반응이 되게 중요하다”라며 “그 반응이 너무 조급하게 앞에 나가서 우리가 편하게 (군함 파견을 수용) 하게 되면 우리를 또 집중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지목을 받은 다른 국가들과 함께 일단 UN으로 가져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지적했듯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의 반응에 따라 압박의 강도를 조절하곤 해왔다. 조급하게 패를 보여주기보다, 지목된 다른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며 사안을 UN 등 국제적 다자 틀로 가져가는 긴호흡이 필요하다.
◆ 실용 외교의 완성은 ‘당당한 국익 관철’
미국의 요구에 끌려가 명분도 없는 전쟁에 참여해 이란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 명확하다. 우방의 요청을 검토하되 한반도의 엄중한 안보 상황과 국회의 비준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론은 시간을 벌고 협상력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한미 연합군 사령부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적극적으로 파병을 보내는 것보다 먼저 대의명분이 중요하다”며 “이번에는 국회 동의를 받는 절차가 시간을 벌 수 있고 국익 차원에서도 훨씬 낫다”고 짚었다.
김 의원의 제언대로 파병은 무엇보다 대의명분이 중요하다. 국회 동의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며 시간을 버는 동시에,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상황을 명분으로 미국의 요구를 정교하게 거절하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훨씬 현명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시대의 생존법을 다시금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관세 압박에도 버티면서 국익을 방어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명분 없는 전쟁터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여야 불문하고 모두 힘을 함쳐야 한다. 여권은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을 설득해야 하고, 야권도 국익을 중심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여야 모두에게 최고의 선거운동이 될 것이다. 유권자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