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흔히 PTA라 부른다) 감독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가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남우조연상, 편집상, 각색상, 캐스팅상 등 총 6개 부문을 석권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이 15일(현지시각)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로 각색상(Best Writing – Adapted Screenplay)을 수상하며 무대에서 트로피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수상으로 PTA 감독은 감독 데뷔 약 30년 만에 처음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그는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4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었다.
씨네필(영화 애호가) 사이에서 PTA 감독의 작품은 'PTA 영화'로 불리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석유 사업가의 욕망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를 묘사한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 여러 인물의 삶이 하루 동안 교차하는 이야기를 담은 '매그놀리아(Magnolia, 1999)', 1970~80년대 미국 포르노 산업을 배경으로 한 '부기 나이트(Boogie Nights, 1997)' 등이 꼽힌다. PTA 감독은 1990년대 미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영화를 통해 권력과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연출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정부의 폭압에 맞서는 좌파 폭력단체에서 투쟁했던 폭탄 전문가였다. 그러나 조직은 해체되고 소시민으로 숨어살면서 홀로 딸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딸이 어느날 정부의 군사조직에 납치되고, 디카프리오는 딸을 구출하기 위해 분투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젊은 시절 디카프리오는 조직원들과 함께 불법 이민자 수용소를 급습해 이들을 풀어주는데 최근의 미국 정치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품 속 설정에서는 정부가 이민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를 표방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에 완성됐지만, 이러한 설정은 트럼프 시대 이후 미국 사회의 분열과 권위주의적 현실을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가운데) 감독과 제작자 사라 머피(Sara Murphy, 가운데 오른쪽)가 1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로 작품상(Oscar for Best Picture)을 수상한 뒤, 출연진 및 제작진과 함께 무대에서 기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외신들도 작품성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또 다른 걸작"이라고 평했으며,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미국 지배 엘리트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 같은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매우 시의적절한 작품"이라며 "이민자 부모와 아이들이 분리되는 현실을 가족 관계의 균열과 대비해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Variety) 역시 "미국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라며 "현재 행정부 아래에서 권위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한 발 앞서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영화는 상영 시간 2시간45분의 대작으로, PTA 감독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제작비인 약 1억3000만 달러(한화 약 1750억 원)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화는 미국 작가 토마스 핀천(Thomas Pynchon)의 소설 '바인랜드(Vineland)'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설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가상 지역 '바인랜드'를 배경으로, 1960년대 반문화 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이 1980년대 레이건 시대를 거치며 정부 감시와 권력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제목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단순히 전투가 계속된다는 의미를 넘어, 자유와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노동·사회운동에서 사용된 구호이기도 하며, 노동권과 시민권, 민주주의를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상징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이 1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로 감독상(Best Directing)을 수상하고 트로피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앤더슨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이 영화를 썼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이민 문제, 정치적 양극화를 날카롭게 그리며, '미국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관객과 아카데미에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