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실종된 수의대생 이윤희 씨의 등신대가 훼손됐다. 범인은 잡고 보니 다름 아닌 ‘동기’였다.
이윤희 씨의 등신대를 훼손한 40대 남성. ⓒ유튜브 채널 ‘이윤희 실종사건 공식채널’ /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2025년 8월 18일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는 “재물손괴 혐의로 40대 남성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라고 밝혔다. A씨는 올해 5월 8일 저녁 8시 20분쯤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한 사거리에 세워진 이윤희 씨의 등신대 2개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이윤희 씨 실종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KBS ‘스모킹 건’, MBC ‘실화탐사대’ 등 여러 방송에 장기 미제 사건으로 수차례 소개됐다. 이윤희 씨는 전북대 수의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 2006년 실종됐다. 그해 6월 5일 교수, 학과 동료 40여 명과 전주시 덕진동 소재의 한 식당에서 저녁 종강 모임을 가진 이윤희 씨는 익일 새벽 2시 30분쯤 1.5km 가량 떨어진 원룸으로 귀가한 뒤 사라졌다.
2006년 실종된 이윤희 씨.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집으로 귀가한 이윤희 씨는 새벽 2시 59분께부터 1시간가량 데스크톱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검색창에 ‘112’, ‘성추행’ 등 단어를 3분간 검색했다. 이윤희 씨의 컴퓨터는 오전 4시 21분에 꺼졌고, 이는 그의 마지막 행적이 됐다.
이틀 뒤인 8일 낮, 이윤희 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학과 친구들은 이 씨가 지내던 원룸을 찾았다. 이윤희 씨의 원룸이 어질러져 있는 걸 본 이들은 “가족들이 어질러진 방을 보면 걱정할 수 있다”라며 이불을 세탁하고 방을 청소했다. 당시 경찰은 이를 내버려두는 등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았다.
실종 6일 뒤 동물 수술 실습실에선 이윤희 씨의 다이어리가 발견됐다. 그날은 동물 사체를 소각하는 날이었고, 당시 소각장으로 옮겨진 동물 사체의 무게는 평소보다 무려 2배나 많았지만 사실 관계 확인을 놓쳤다. 실종 일주일째였던 6월 13일에는 누군가 이윤희 씨 컴퓨터에 접속했는데, 이 과정조차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딸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이동세 씨. ⓒ유튜브 채널 ‘이윤희 실종사건 공식채널’
내 딸 윤희야! 네 아비가 90살이 되어도, 100살이 되어도, 반드시 너를 찾겠다!
올해 1월 17일 이윤희 씨의 아버지 이동세 씨는 이렇게 적힌 피켓을 들고 장수 동물위생실험소와 전주완산경찰서 앞에서 1인 피켓시위에 나섰다. 딸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온 60대 아버지는 어느덧 아흔을 앞둔 노인이 됐다.
이윤희 씨의 부모는 생사조차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딸을 찾기 위해 20년 가까이 온갖 노력을 다해왔다. 앞선 5월에는 전주지역 도로 등에 총 6개의 등신대를 설치했다. 이 등신대 중 일부는 A씨의 집 근처에 세워졌다.
이 가운데 A씨가 이윤희 씨와 같은 학과 동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경찰 조사 중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 앞서 A씨는 “등신대 일부가 집 근처에 세워졌다”라며 이윤희 씨 가족 등을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희 씨의 등신대를 훼손한 남성이 대학 동기로 밝혀졌다. ⓒ유튜브 채널 ‘이윤희 실종사건 공식채널’
A씨의 범행 장면은 유튜브 채널 ‘이윤희 실종사건 공식채널’에 게재된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 속에서 A씨는 하얀색 마스크와 파란색 수술용 장갑을 착용한 채 등장했다. 행인인 것처럼 등신대 곁으로 다가온 A씨는 등신대를 고정하기 위해 묶어둔 케이블 타이를 칼로 끊어내더니 이를 쓰러뜨리고 잠시 사라졌다.
약 9분 후 다시 현장에 나타난 A씨는 바닥에 놓인 등신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윤희 씨의 모습을 한 등신대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등신대를 부러뜨린 A씨는 칼을 들고 서서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뒷짐을 지고 현장에서 벗어났다. A씨가 떠난 장면 위로는 “이날은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 나와 아내는 산산이 부서진 딸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한편 이윤희 씨의 가족은 재수사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경찰이 가족들에게 제공한 이윤희 씨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가 복제본인 게 확인됐다는 주장이다. 이 씨의 가족은 지난해 10월 30일 “실종 당일 딸이 살던 원룸 집에 들어가 3시간가량 컴퓨터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 대학 동기를 상대로 경찰이 소환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라며 현직 수사 책임자 및 전직 전북경찰청장을 증거 인멸 및 직무 유기로 고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