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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발언이 그대로 잊힐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큰 관심을 받는 게 얼떨떨해요.”

"나도 시민이고 여러분 근처에 있고 (여러분과) 별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김유진(가명)씨. ⓒ엑스 갈무리
"나도 시민이고 여러분 근처에 있고 (여러분과) 별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김유진(가명)씨. ⓒ엑스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규모가 커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분출됐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사는 김유진(가명)씨의 발언을 담은 2분짜리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옛 트위터)에서만 누적 조회수 517만을 넘겼다(15일 기준). 윤 대통령 탄핵 뒤에도 민주주의, 그리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남겼다. 한겨레는 14일 유진씨를 전화로 만나 발언 전후 이야기를 들었다.

유진씨는 발언 첫머리에 “저는 저기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직업부터 공개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거기(집회) 오신 분들의 이목을 끌고 싶었다. 나도 시민이고 여러분 근처에 있고 (여러분과) 별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 일을 스스로 밝히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다른 시민과) 거리감을 좁혀서 저도 이번 사태에 분노하고 민주사회의 똑같은 시민으로서 발언할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유진씨는 ‘12·3 내란’ 사태가 벌어진 그 밤엔 피곤해서 일을 쉬고 자려다가 뉴스를 봤다. “우리나라 역사상 비상계엄 때 사람들이 (계엄군 등에 의해) 죽은 경우가 많았으니까, 또다시 유혈 사태가 일어날까봐 무서워서” 관련 뉴스를 계속 찾아봤다. 일을 쉬는 날이면 매번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과거 박근혜 탄핵 시위나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등 다른 집회에도 참여했다. 박근혜 정권 때는 직접 엑스에서 사람들을 모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를 주최하기도 했다. “지역에서는 집회가 상대적으로 덜 활성화돼 있어서 참여할 곳이 마땅치 않았거든요.”

 

불쑥 솟은 용기에 '우다다' 쓴 발언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1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전포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체포 부산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손피켓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24.12.14. ⓒ뉴스1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1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전포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체포 부산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손피켓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24.12.14. ⓒ뉴스1

그래도 집회 무대에 서서 발언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발언에서 쿠팡 노동자들의 사망, 경기 파주시 성매매집결지 ‘용주골’ 강제철거, 동덕여대의 대학 민주화 시위 등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열거했다. 장애인 이동권, 교제폭력, 성소수자·이주노동자 차별,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 등의 문제도 여전하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11일 집회 발언 중)

발언문을 작성한 건 집회가 열리기 사나흘 전이다. “탄핵 집회에는 성소수자, 장애인 친구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 같이 ‘으쌰으쌰’ 하지만, 이 사태가 끝나도 (소수자) 차별은 남을 테고 우린 여전히 투쟁할 게 많다는 게 문득 슬프게 다가오더라고요. 앉은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우다다 글(발언문)을 썼어요.”

그는 11일 집회가 시작되기 30분 전에 주최 쪽에서 ‘발언 신청자를 받는다’고 공지하는 걸 듣자니 “불쑥 용기가 났다”고 했다. 자신의 직업을 밝히면 청중으로부터 손가락질과 경멸하는 눈빛이 느껴지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현장 반응은 달랐다. “발언 초반에 박수가 터져 나왔을 때 굉장히 울컥했어요. 사실 ‘내려가라’ 이런 말을 들을 각오까지 하고 (발언하러) 올라간 거긴 한데, 선뜻 손뼉 치고 환호해주고 ‘맞습니다’ 이런 맞장구를 들으니 울컥해서 발언 막바지에는 목소리가 살짝 잠겼었어요.”

 

'저건 전문 시위꾼' 악플에 대한 반응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1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전포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체포 부산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손피켓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2024.12.14. ⓒ뉴스1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1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전포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체포 부산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손피켓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2024.12.14. ⓒ뉴스1

하지만 영상이 화제가 되고 여러 언론이 발언을 기사화하면서 ‘악플’도 쏟아졌다. 그는 “친구들이 먼저 뉴스 댓글을 보고 저한테는 보지 말라고 권해서 가능한 안 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인상 깊은 반응’을 묻자, 악플 가운데 하나를 꼽았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저건 술집 여자의 발성이 아니다, 전문 시위꾼이다’.(웃음) 전문 시위꾼은 아니고요,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습니다.”

유진씨는 ‘생애 최초’ 집회 발언에 도움을 준 경험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꼽았다. 올해 부산의 퀴어 커뮤니티 서점 ‘홍예당’에서 운영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스터디’에 반년 정도 참여한 뒤 공연까지 함께했다. “2주에 한 번씩 친구들 앞에서 농담 따먹기 한 경험이 사람들 앞에 서는 두려움을 엄청 줄여줬어요.”

한 친구는 유진씨에게 “언니는 창녀인 동시에 성녀”라고 말했다. 유진씨는 ‘극과극’ 반응이 공존하는 현실을 보여줘 “맞는 말”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에게 ‘자기소개를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노래방 도우미. 나이는 이십대 후반. 몸과 마음이 여기저기 아파 부득불하게 시급이 높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진씨에게 ‘집회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전 (집회) 발언에서 다 해서 더 떠오르는 말이 없긴 하지만, 당부의 말씀 드리고 싶어요. 주변 시민에게 관심 갖고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자고. 상대방에게도 나름의 사연과 맥락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다음은 유진씨의 12월11일 부산 서면 집회 발언 전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저기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

‘너 같이 무식한 게 나대서 뭐하냐’,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 같으냐’ 같은 말에 반박하고 싶어서, 또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저를 경멸하거나 손가락질하실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 저는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자 이 자리에 용기내어 올라왔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께 한 가지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건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시켰고 또 윤석열을 탄핵시킬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국민의 절반은 박근혜와 윤석열을 뽑은 사람들입니다. 내 집 값이 오른대서, 북한을 견제해야 해서,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그렇게 부추겨서 국민의 절반이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강남에 땅이 있는 놈들은 그렇다 쳐도, 쥐뿔도 가진 것 없는 이삼십대 남성들과 노인들은 왜 국민의힘을 지지할까요? 그것은 시민의 교육의 부재와 그들이 소속될 적절한 공동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우경화가 가속되는 시대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막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윤석열이, 또 다른 박근혜가, 또 다른 전두환과 박정희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주십시오. 더불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오로지 여러분의 관심만이 약자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것이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이라고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두 발 뻗고 잠자리에 들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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