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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부탁해'인가 '내 딸을 부탁해'인가?
ⓒSBS 캡처

<아빠를 부탁해>(에스비에스·SBS)는 50대 아버지와 20대 딸의 관계를 조명하려는 취지의 관찰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 2월 설 특집으로 방송되었을 땐 반응이 좋았지만, 3월 주말 예능으로 정규 편성된 뒤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다가, 지난주에 출연진의 절반을 교체했다.

'아빠를 부탁해'인가 '내 딸을 부탁해'인가?

'아빠를 부탁해'의 조재현 씨와 무명 배우였던 혜정 양.

사실 서먹한 부녀의 일상을 정규편성으로 다루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부녀가 함께하는 각종 이벤트로 프로그램의 중심이 옮겨갔다. 그 결과 올해 1월 끝난 <아빠! 어디가?>(문화방송·MBC)가 중반 이후 캠핑홍보 프로그램으로 변질됐다고 비판받던 것과 같은 비난이 일었다. 일상이 아니라 온갖 여행과 이벤트로 소통을 추구하는 건 시청자의 입장에서 위화감만 커진다는 것이다.

'아빠를 부탁해'인가 '내 딸을 부탁해'인가?

그러나 위화감은 비단 여행에서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집안을 비추는 장면에서 더 큰 위화감이 느껴진다. 출연자들의 쾌적한 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동산 계급사회’란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어느 지역의 어떤 집에 사느냐는 곧 재산정도를 가리키는 지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한국방송·KBS2)에서도 출연자들의 좋은 집은 ‘삼포세대’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아이들의 움직임과 귀여움이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집은 배경으로 묻혔다. 하지만 성인들의 무덤덤한 움직임만 포착되는 화면에서 집은 배경 이상으로 기능한다.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눈에 들어오는데, 그나마 인물에 주목할 수 있는 이유는 ‘아기’ 대신 ‘미녀’와 약간의 ‘동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빠를 부탁해>는 제목과 반대로, 좋은 집으로 표상되는 ‘성공한 50대 아버지’가 ‘미모의 20대 딸’을 부탁하는 프로그램이다. 뭘 부탁하느냐고? 사회적인 네트워킹이다. 인지도를 높이면 취업이든 결혼이든 목적을 이루기 쉽다. 조민기의 딸 윤경씨는 아버지의 유명세로 편견에 시달렸다며 눈물을 흘리고, 조재현은 무명 연기자였던 딸 혜정씨가 아버지의 유명세로 기회를 얻는 것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방송은 그들의 진심과 무관하게 객관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스비에스·4월 종영) 등에 연예인들이 자녀와 함께 출연해 연예계 지망생 자녀들의 얼굴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듯, <아빠를 부탁해> 역시 연예인의 딸들에게 쉽게 방송에 입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 투입된 이덕화의 딸, 32살 지현씨는 오랫동안 무명 연기자였다. 이덕화의 유행어 “부탁해요~”와 절묘하게 겹치면서, ‘연예인 음서제도’ 논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박세리 부녀의 출연은 그러한 논란에서 벗어나 있단 점에선 고무적이나, 박세리 소유의 국내외 호화주택들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성인인 딸이 아버지와 살가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육아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며, 딸의 정체성 확립에 아버지의 존재가 필요하다. 최근 양육자로서 아버지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딸 바보’가 얘기되는 건 고무적이다. 그러나 딸의 어린 시절에 ‘부재했던 아버지’가 성인이 된 딸과 뒤늦게 살가워지는 건 다른 문제다. 언제부터 살갑지 않은 부녀관계가 비정상으로 치부된 걸까. 혹시 프로그램이 새롭게 설정한 ‘가족 판타지’는 아닐까. 오히려 ‘딸 바보’ 아빠라 할지라도 성인이 된 딸과는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게 자연스런 관계심리학이 아닐까.

프로그램은 ‘살가운’ 아버지를 전시하지만, 티브이 안팎을 가로지르는 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딸을 부탁하는 강력한 부권이다. 다 큰 자식을 정신적으로 놓아주지 못하고, 계속 아버지의 능력으로 부양하다가 심지어 사회적 자리를 ‘부탁하는’ 지경에 이른 기형적 부모자식관계가 분노의 세대갈등을 낳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세대갈등이 아닌 계급갈등이다. ‘부모가 최대의 스펙’이란 말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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