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보험 계열사가 없는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아킬레스건'은 명확하다. 증권업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그룹 전체의 실적이 요동칠 수밖에 없는 천수답 형태의 수익 구조다. 수익이 증권업에 편중돼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는 증권시장이 좋을 때조차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 매물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데다가 보험업 전반의 부진으로 매수자 입장에서의 가격협상력도 커지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올해 내로 보험사 인수를 마무리짓겠다고 하면서 "손보와 생보 중 내부적으로는 이미 결정됐다"고 밝혔지만, 막상 시장에는 양쪽 매물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입장에서는 매수자 우위의 구도 속에서 결정을 내린 쪽도, 아닌 쪽도 두드려보며 그룹의 약점을 매력적인 가격으로 메울 수 있는 최적의 '쇼핑' 시간이 열린 셈이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이 한국투자금융그룹의 아킬레스건인 '증권사 편중'을 해결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 압도적 증권 실적의 역설, 그룹 체급 키우려면 '안정적 현금흐름' 필수
한국투자금융지주는 5대 금융지주와 메리츠, 미래에셋 등 국내 주요 금융그룹(지방금융지주 제외) 가운데 유일하게 보험업을 영위하지 않고 있다. 수익 구조와 자산 구성 모두 증권 부문에 극단적으로 쏠려 있는 구조다.
2026년 1분기 보고서 기준 한국투자금융그룹의 연결기준 자산은 148조 원, 한국투자증권의 별도기준 자산은 120조6255억 원이다. 그룹 전체 자산의 80% 이상을 한국투자증권이 차지하고 있다. 그룹 전체 순이익에서 한투증권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22년 83.7%, 2023년 84.2%, 2024년 106.9%, 2025년 99.5%에 이른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국내 증시 강세에 힘입어 2025년과 2026년 1분기 실적 기준 '역대급' 호황을 누렸다. 금융권의 무게추가 은행에서 증권으로 이동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업황 자체의 호황에 따른 것이고 거래대금과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는 증권업 특성상 시장 환경에 따라 그룹 전체 실적의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언제나 한국투자금융그룹을 따라다닌다.
반면 보험업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증권과 달리 최근 업황 부진을 겪고 있긴 하지만, 보험료 수입이 꾸준히 유입돼 경기 변동 영향이 작고 진입장벽이 높아 그룹의 안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경쟁사, 특히 메리츠금융그룹과 비교하면 한국투자금융의 '빈칸'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핵심 계열사인 한국투자증권(2025년 기준 지배주주귀속 기준 당기순이익 2조124억 원)이 경쟁사인 메리츠증권(7673억 원)을 순이익 면에서 압도함에도 불구하고, 메리츠화재의 막강한 존재감 때문에 금융그룹 전체 체급에서는 한국투자금융이 메리츠금융에게 밀리고 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메리츠금융지주의 지배주주 귀속 기준 연결 당기순이익은 2조3004억 원, 주주환원 지표인 ROE는 22.7%를 기록해 한국투자금융(순이익 2조204억 원, ROE 18.8%)을 앞섰다.
◆ 주총에선 "내부 결정", 시장에선 모든 매물을 전방위로 검토
이런 상황에서 한국투자금융지주와 김남구 회장은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내 인수"를 공개적으로 약속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당시 "생명 또는 손해보험인지에 대한 방향성이 내부적으로는 나왔고 연내 인수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점은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공언했음에도,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실제 시장 움직임은 생보와 손보 매물을 동시에 쥐고 흔드는 '양다리 전략'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적 행보의 이면에는 현재 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쇼핑의 계절'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김 회장의 치밀한 셈법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특정 업종을 점찍어두었더라도 이를 시장에 먼저 밝혀 원매자로서의 패를 노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생·손보 시장 전체를 뒤흔들며 동시다발적인 협상이 오히려 ‘매수자 우위’의 실리를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투자금융지주의 2025년 연결 기준 자산 가운데 현금 및 예치금만 보더라도 13조7941억 원, 현금 유입으로 이어지는 당기순이익이 2조244억 원이라는 것을 살피면 사실상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보험사 매물 가운데 한국투자금융지주가 감당하기 힘든 매물이 없다는 점 역시 김 회장이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고 검토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매물은 KDB생명과 MG손해보험의 가교보험사인 예별손해보험이다.
KDB생명은 최근 산업은행의 515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났으며, 지난해 말 기준 경과조치 후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은 205.73%를 기록해 금융당국 권고 수준을 상회하는 데 성공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매각에 무려 6번이나 실패했던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려 할 가능성이 높아 매수자 우위의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만 올해 1분기보고서 기준 킥스 비율은 186.10%로 지난해 연말보다 다소 하락하며 자산건전성 우려가 남아있다는 점, 최근 예비입찰에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대형사들이 대거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생겨난 점은 변수다.
손해보험 매물인 예별손해보험 역시 강력한 선택지다.
예별손해보험은 금융당국이 MG손해보험의 보험계약을 이전받기 위해 세운 가교보험사로, 한국투자금융은 4월16일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하며 이미 강한 인수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 밖에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롯데손해보험 등도 꾸준히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인수 물망에 오르고 있다.
◆ '연내 인수' 약속 지킬까, 다가오는 6월·8월 입찰이 최대 분수령
김남구 회장과 회사가 직접 주주들에게 "2026년 내 인수" 시한을 못 박은 만큼 한국투자금융그룹 M&A의 최대 분수령은 다가오는 여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험공사가 재공고한 예별손해보험 매각의 최종 인수제안서 제출 마감일은 6월30일로 다가와 있으며, KDB생명의 본입찰 역시 8월경으로 예상된다. 현재 예별손해보험 인수전에는 한국투자금융 외에도 교보생명, OK금융그룹, 태광그룹(흥국화재) 등이 관심을 보이며 실사에 착수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영역 모두 자본 확충 부담이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인 데다가 애초에 한국투자금융그룹이 보험사 인수를 노리는 이유가 안정적 포트폴리오 구성이라는 것을 살피면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 모두를 인수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라며 ”결국 시장에 나오는 매물을 지속적으로 모두 검토하면서, 최종 낙점은 인수 가격이나 공적자금 지원 조건 등 그룹에 실질적으로 더 유리한 판을 깔아주는 쪽에 찍힐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