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환 CJ제일제당 대표이사가 설탕담합 사건 대응의 무게중심을 형사 리스크 관리로 옮겼다. 전면 부인 대신 기소 초기 단계에서 혐의를 인정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이 기소 3개월 만에 공소사실을 인정한 배경에는 ‘검찰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통한 기소면제·감형 등 실질적 이익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CJ제일제당 측 변호인이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1차 공판에서 설탕 담합 혐의를 인정했다. 윤석환 CJ제일제당 대표이사가 지난해 선임된 뒤 약 3개월여 만의 결정이다. ⓒ연합뉴스
◆ 형사 리스크 초기에 관리하겠다는 실익 중심 전략
19일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윤 대표가 선임된 뒤 처음 맞은 검찰 기소 국면에서 설탕담합 혐의를 공식 인정했다. 윤 대표가 지난해 10월 선임된 지 3개월여 만이다.
실제로 CJ제일제당 측 변호인은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1차 공판에서 “공소사실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재판에 출석한 전·현직 임직원들 역시 혐의 인정 여부를 묻는 재판부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12일 관련 공판을 열고 증거 인부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기소 대상은 CJ제일제당 법인과 사업본부장 박모 씨를 포함한 임직원 4명 등이다. 이들은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설탕 가격의 변동 폭과 시기를 합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관련 거래 규모는 3조2715억 원으로 추산된다.
CJ제일제당의 이번 대응은 혐의 인정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7년 설탕담합 사건 당시에도 회사는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해 과징금을 50% 감면받았다. 다만 당시에는 공정위 제재 국면에서의 자진신고에 그쳤고 검찰에 기소된 뒤에는 행정소송과 형사재판을 통해 혐의를 다투며 장기간 법적 공방을 이어갔다.
반면 이번에는 검찰 기소가 있은 뒤 초기 공판 단계에서 공소 사실을 인정하며 형사 리스크 축소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대응의 무게중심이 달라졌다. 이번 대응 변화는 윤 대표가 ‘검찰 리니언시’를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2020년 12월 도입된 검찰 리니언시는 혐의를 먼저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할 경우 피고인의 형사·경제적 책임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1순위 신청자는 기소면제를, 2순위 형량 50% 감경을 받을 수 있다. 공정위 리니언시가 과징금 감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검찰 리니언시는 형사처벌 자체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인이 더 크다.
과거 공정위 리니언시는 과징금 부담을 낮추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형사처벌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고발 면제가 원칙이더라도 검찰의 고발요청권이 남아있었고 자진 신고 과정에서 담합 사실 인정과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자체가 오히려 형사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공정위 제재를 전제로 한 사후적 소송 대응보다 검찰 수사 초기 단계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협조해 형사 리스크와 불확실정을 줄이는 전략이 합리적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 정부의 담합 감시 강화 기조도 전략 전환에 영향
정부가 담합 감시를 강화하는 기조 역시 이번 전략 전환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설탕담합 수사는 대통령이 지난해 9월30일 국무회의에서 식료품·생활용품 기업들의 담합 의혹 조사를 지시한 데서 출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물가는 담합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라며 “(소수의 유통회사가) 국내 유통망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통제하지 않으면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기조 아래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담합 제재 수위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의 과징금 상한은 매출의 6%에서 20%로, 담합은 20%에서 30%로 각각 상향하는 내용이다. 공정위는 이러한 법 개정을 올해 상반기 안으로 마무리하는 계획을 세웠다.
CJ제일제당의 이번 대응 방식은 윤 대표의 경영 이력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표는 글로벌 규제와 대외 리스크가 큰 바이오 사업을 이끌어온 인물로 불확실성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에 익숙한 것으로 분석된다.
바이오사업은 국가별 규제 체계가 복잡하고 연구개발(R&D), 인허가, 시장 진입 과정에서 법·제도 변화에 따른 리스크가 상존하는 분야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리스크를 초기에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 대표는 서울대 식품공학 학·석사를 졸업한 뒤 CJ제일제당에서 바이오사업부문을 총괄해왔다. 남미사업담당, 글로벌마케팅담당, 기획관리담당, 동물영양(AN)사업담당, 바이오기술연구소장, 단백질솔루션(PS)사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2023년부터는 바이오사업부문 대표를 맡았고 2025년 10월 CJ제일제당 대표이사로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