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숨진 채 발견됐던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 고인이 남긴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을 맡았던 고인이 남긴 메시지. ⓒ한겨레 /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VoiceOfSeoul’
2025년 8월 5일 한겨레는 “유족을 통해 고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보했다”라고 단독 보도했다. 사망 당시 51세였던 김아무개 전 국장은 김건희 씨의 명품 디올백 수수 의혹과 이재명 대통령의 부산 피습 사건 이후 예기치 않게 벌어진 헬기 이송 논란 사건을 맡았던 인물이다.
김 전 국장은 작년 8월 8일 오전 9시 48분께 세종 아름동의 한 아파트 안방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날 김 전 국장이 출근하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자 아파트를 찾은 직원이 고인을 최초로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서 김 전 국장이 남긴 메모 형식의 짧은 유서를 확보한 경찰은 “유서는 있지만 내용을 밝힐 수 없고, 사인을 조사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의 실무 책임자였던 김 전 국장은 숨지기 직전까지, 이 사건을 종결 처리한 권익위의 결정에 심적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한 유족은 한겨레 측에 “고인이 숨진 뒤 휴대전화에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발견했으나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공개를 보류해왔다”라고 털어놨다.
고인의 빈소와 나와의 채팅 메시지. ⓒ한겨레
생전 김 전 국장은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기능을 통해 이 메시지들을 남겼다. 숨진 채 발견되기 9일 전인 작년 7월 30일부터 8월 7일까지, ‘김○○ 남기는 글입니다’라는 이름의 대화방을 개설해 총 26개의 글을 적었다. 그중 7개는 가족, 동료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 글이었고 나머지 19개 글에는 권익위의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 종결 처리와 부패 방지 제도 등에 대한 고인의 생각, 아쉬움, 억울함, 당부 등이 적혔다.
대화방이 최초로 만들어진 지난해 7월 30일은 권익위 전원위원회가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에 대해 “법률 위반 사항이 없다”라며 종결 처리한지 50일이 지난 시점이다. 김 전 국장은 같은 날 ‘대통령실 ‘윤, 김건희 명품백 신고 안 했다’ 검찰에 회신’이라는 한겨레 단독 보도 기사 링크를 첫 메시지로 올렸다.
8월 2일에는 대화방에 아내, 아이들, 동료 등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이날 오후 1시 49분 “자랑스러운 권익위 가족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했던 자랑스러운 시간들 항상 기억할게요”라고 적은 김 전 국장은 “감사했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라고 덧붙였다. 오후 2시 37분에는 “잘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 죄송하다 모두”라는 메시지를 적었다.
오후 3시 20분, 다시 나와의 채팅에 “법과 논리의 무게보다 양심의 무게가 더 크다는 교훈을 모든 공직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메시지를 전송한 김 전 국장은 2분 뒤 “지난 20년간 만든 제도를 제 손으로 망가뜨릴 줄이야. 이젠 뒤늦은 후회지만”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국장은 또 “내 몸뚱아리는 화장해서 뼛가루는 바람에 날려주세요”라며 “어디에 흔적을 두는 것이 부끄럽다”라고 괴로워하기도 했다.
고인이 남긴 카카오톡 메시지. ⓒ한겨레
이후 김 전 국장은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과 관련된 메시지에 집중했다. “가방 건외의 사건들은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고 저도 자부한다. ○○님, ○○님 힘을 냅시다”라는 메시지를 나와의 채팅에 보낸 김 전 국장은 “법 문언도 중요하지만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처리도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좀 더 고양된 윤리적 의무가 요구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라는 물음도 던졌다.
김 전 국장은 “법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통합주의가 나온 것은 이런 배경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형식적 법치주의를 마련했지만, 정의에 기반을 둔 실질적 법치주의를 고민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가진 자와 권력자에겐 더 엄격하고, 약자에겐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법률의 적용이 필요하다”라는 소신도 밝혔다. 5개 반부패 법률의 정치적 악용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적은 김 전 국장은 “이 소중한 제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지 모두 생각하고 고민해달라”라는 당부를 더했다.
숨지기 하루 전인 8월 7일에도 6개의 메시지가 작성됐다. 이날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2주간의 전국 간담회를 마쳤다는 김 전 국장은 “그간 제가 금과옥조로 생각한 법의 문제도 알게 됐고, 법에 대한 오해도 알게 됐다. 8조 3항의 불확정 규정들의 시급한 보완이 필요하고 그럼으로써 기대 가능성을 높여야 하는데 가방 건과 관련된 여파가 너무 크다”라고 토로했다.
1분 뒤 김 전 국장은 “제 잘못은 목숨으로 치르려 한다”라는 메시지를 자신에게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뿐이라고 적은 김 전 국장은 “왜 제가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어쭙잖은 정의감과 무능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라고 첨언했다. 이날 밤 10시 40분, 김 전 국장은 “나 하나로 위원회에 대한 정체적 공세와 비난이 없어지길 절실히 기원한다”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기록을 마쳤다.
한편 영국에서 부패방지 분야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부패방지 업무 전문가로 힘써 온 김 전 국장은 지난 2004년부터 사망 전까지 권익위에 20년간 몸담았다. 2024년 3월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김 전 국장은 세 달 뒤인 6월, 이미 법정 처리 기한(최장 90일)을 훌쩍 넘겼던 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권익위 전원위 안건으로 올렸다.
당시 윤석열 부부의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가 큰 논란이 됐던 만큼, 김 전 국장은 전원위가 해당 사건을 수사기관에 넘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사건은 법 위반 사항이 없다며 종결 처리됐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김 전 국장은 그 뒤로 밥도 거의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자책하고 괴로워했다는 전언. 가족들은 고인이 “이 사건이 종결 처리될 줄은 몰랐다”, “부패 방지 분야에 한평생을 바쳐 온 내 과거가 전부 부정당했다”라는 이야기를 지속해서 털어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