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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가득찬 아파트와 빌딩의 지하·지상 주차장 풍경은 이제 일상이 됐다. 주차난으로 인한 불편이나 출차 지연 정도는 이제 불편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

그런데 비좁은 주차장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자칫 대형 재난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관계 체계와 안전 기준 부족으로 구조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장마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서울 아산병원 지하주차장에서 3시간 고립 : 주차장 혼잡은 '재난의 불씨'
국내 주차장의 고질적 문제점은 재난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 AI 이미지.

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일대에서는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일부 시민들이 몇 시간 동안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올림픽대로의 차량 흐름이 평소보다 둔화된 상황에서 병원 방문 차량까지 한꺼번에 몰리면서 병원 안팎의 교통이 사실상 마비됐다. 병원을 나서려던 차량들이 지하주차장에 장시간 갇히면서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이번 사례는 다행히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주차장 혼잡이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위험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차장 정체 자체가 재난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겠지만, 대피와 구조를 지연시켜 피해를 확대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병원처럼 환자와 노약자 등 재난 취약계층의 이용 비중이 높은 시설에서는 주차장 운영 방식과 차량 동선 관리, 화재·침수 대비 체계, 비상 대피 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서울 은마아파트 화재는 주차장 혼잡이 참사의 규모를 키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8층에서 발생한 화재는 새벽 시간대 주민들이 잠든 사이 빠르게 번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와 구급차는 단지 곳곳에 이중·삼중으로 주차된 차량 때문에 현장으로 신속히 진입하지 못했다. 주민들이 직접 차량을 밀어 통로를 확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좁은 진입로와 노후한 건물 구조, 스프링클러 부재까지 겹치면서 초기 진화와 대피가 지연됐고, 결국 10대 여학생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졌다. 주차난으로 인한 늦은 대응이 화재 피해를 더욱 키운 셈이다.

또 2024년 8월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 사건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사고 당시 불은 지하주차장 내부에서 급속히 확산됐고, 차량 880여 대가 피해를 입는 대형 사고로 번졌다. 당시 현장에서는 배관 보온재를 따라 불길과 열기가 퍼졌고, 지하주차장에 제연설비가 없어 유독가스와 열이 빠르게 확산된 구조적 문제가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적됐다

이 같은 사례들은 개별 사고처럼 보이지만 공통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국내 주차장은 지하화·대형화·복합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평상시에는 높은 수용 효율을 제공하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오히려 피해를 증폭시키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천651만5천 대에 이르렀다. 차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주차장 안전 관리와 재난 대응 체계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하주차장은 침수와 화재에 모두 취약하다.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배수 능력보다 유입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물이 차오를 수 있다. 여기에 주차된 차량은 구조 차량과 대피 인원의 이동을 동시에 가로막는다. 반복되는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는 지하 공간이 단시간에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화재에 대한 취약성도 여러 차례 지적됐다. 한국소비자원이 2025년 3월 실내 공영주차장 30곳과 전기차 전용주차구역 835면을 점검한 결과,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권장 이격거리를 확보한 주차면은 48면(5.7%)에 불과했다. 이는 전기차 화재를 포함한 실내 주차장 화재에 대응할 기본적인 여건조차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전기차 보급이 더욱 확대될수록 이러한 취약성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은마아파트와 같은 지상주차장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의 자가용 등록 대수는 약 263만 대이며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은 평균 106.5%다. 수치상으로는 차량 1대당 주차 공간이 확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울 426개 행정동 가운데 155곳(36.4%)의 주차장 확보율이 100%를 밑돈다. 결국 부족한 주차 공간을 메우기 위해 통로와 진입로까지 주차 공간으로 활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비상 상황에서는 차량을 이동시킬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이중주차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동 명령이나 견인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아파트와 건물 주차장, 골목길 등 사유지는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강제 단속과 견인이 제한된다. 위험은 분명하지만 사전에 바로잡을 수단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국내 주차장의 혼잡은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재난 위험을 증폭시키는 구조적 문제다. 평소에는 출차가 조금 늦어지는 정도로 여겨졌던 혼잡이 화재와 침수, 응급환자 이송, 대피 상황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장애물로 바뀐다. 차량은 계속 늘고 주차 공간은 지하로 더 깊어지고 복잡해지는 반면, 관리 체계와 안전 기준, 비상 대응 시스템은 여전히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과제는 단순히 주차면 수를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 상황에서도 구조 차량이 즉시 진입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고, 이중주차를 실효성 있게 관리하며, 침수와 화재에 대비한 시설 기준과 운영 매뉴얼을 현실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 주차장은 자동차를 세워 두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도시 인프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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