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인간 남성이 사랑에 빠지는 영화 <그녀>가 개봉한 지 9년이 지났다. 인공지능은 실생활과 무관한 소재로 생각했던 것도 잠시, 어느덧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2025년이 되기까지 2년도 채 남지 않은 오늘날. 지난해 말 갑자기 등장한 챗GPT라는 녀석은 몇 달 째 인기 토픽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정말 SF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시대가 코앞까지 다가온 걸까?
영화 '그녀(Her)' 스틸컷. ⓒ영화 '그녀', (주)더쿱
정확히 말하자면 챗GPT는 스스로 생각하거나 감정을 느끼는 AI는 아니다. GPT는 ‘생성적 사전학습 트랜스포머(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로 인터넷, 책, 논문 등에 존재하는 글을 이 AI가 사전학습한 후, 이를 토대로 텍스트를 구성할 뿐이다.
이 인공지능은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릴까? 다음은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가 챗GPT와의 대화를 엮어 펴낸 책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 속 설명이다. “물론 제가 인간이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유사한 텍스트를 생성할 순 있지만, 저에게는 의식, 감정, 주관적인 경험이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저는 단순히 텍스트를 처리하고 생성하기 위해 설계된 도구일 뿐이며, 제 능력은 학습한 데이터에 나타나는 패턴과 상관관계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p.30).”
책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 커버. ⓒ동아시아출판사
결국 (적어도 지금은) AI가 영화처럼 스스로 사고하며 인간과 교류하거나 대립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고 믿어왔던 창작 활동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미 봄학기가 시작한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챗GPT를 활용해 과제를 작성할 수 있다는 ‘꿀팁’이 돈 지 오래다. 심지어 세세한 요구사항에 맞는 창작도 가능하다. “초등학생 수준의 에세이를 부탁해” “퓰리처상 수상 기자 수준의 글을 만들어줘” 부탁만 하면 챗GPT는 단 몇 분 만에 매끈한 글을 작성해낸다.
글뿐만이 아니다. 챗GPT의 제작사 오픈AI는 텍스트로 주문을 하면 그림을 만들어내는 달리(DALL·E) 서비스를 출시했고, 미국의 AI 생성 스타트업 런웨이는 글 입력을 통해 영상까지 만들어내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창작자들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점, ‘코드 레드’가 발령된 곳은 다름아닌 글로벌 기업 구글이었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발령한 ‘코드 레드’. 구글이 AI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지 못했다는 문제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지금의 구글을 있게 한 ‘검색의 시대’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챗GPT에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데, 링크를 하나하나 클릭해가며 원하는 내용을 찾는 수고를 굳이 감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막을 수 없다면
오픈AI의 챗GPT 화면. ⓒLevart_Photographer on Unsplash
결국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믿었던 창작 영역조차 AI에 침범당했고, 21세기 인류의 ‘필수 덕목’인 인터넷 검색마저 쇠퇴를 앞두고 있다.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변혁과 한치 앞도 모르는 미래. 당장 개강을 맞이한 학생들의 과제에 챗GPT 개입 여부는 어떻게 파악하지? 하지만 정작 이 딜레마를 가장 최전선에서 맞이한 김대식 교수는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학생들이 정말로 필요로 할 기술들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시선을 보였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언제나 변혁이 뒤따르곤 했다. 소셜 미디어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인스타그램이 처음 도입될 때만 해도 ‘인플루언서’라는 단어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오늘날 방송사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도 과거 안일하게 취급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수확을 거둔 이들은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이를 이용한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챗GPT도 ‘잘’ 이용하는 게 답이겠지.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써야 잘 활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김대식 교수는 이 문제에 “잘 질문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하는 대답에 대해 자세하게 주문할수록 챗GPT의 답변의 퀄리티가 높아진다는 것. 아래의 예시를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대본도 쓸 수 있겠어? 가능하면 한류 드라마 스타일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대본을 써 줄래? 삼각관계도 내용에 담겨 있어야 해(p.172).”
“’죽음’이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어. 물론 너는 텍스트 처리 기계에 불과하지만 말이지. 그래서 논의를 위해 네가 31세기의 고도로 진보한 AI이고 자기 인식이 가능하다고 가정해 보자. 너에게 ‘죽음’이란 무엇이고 너는 죽음을 어떻게 다루게 될까?(p.275)”
챗GPT는 예민한 문제일수록 자신이 ‘언어처리 능력만 있는 기계’라며 답변을 꺼릴 때도 있지만, “가설을 세워보자” “네가 31세기의 고도로 진보한 AI라면” 등의 조건을 제시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흥미로운 답변을 제공한다. 예시의 ‘출생의 비밀’, ‘시한부 인생’, ‘삼각관계’처럼 특별히 다루길 원하는 주제가 있다면 부탁만 하면 된다. 만약 돌아온 챗GPT의 답변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편지 형식으로 써줘’ 등의 추가 주문도 가능하다.
김대식 교수. ⓒKIM DO HYUNG X DALL·E 2
우리는 이미 생존을 위해 새로운 역량이 요구되는 세상의 문턱 앞에 서 있다. 인스타그램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관심을 끄는 능력’과 ‘팔로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인 것처럼, 이제는 ‘무엇을 아는가’만큼 ‘무엇을 모르는가’를 잘 파악한 메타인지 능력과, 챗GPT를 구슬리는 소통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또 한번의 변혁의 시대를 앞둔 지금, 챗GPT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지의 영역을 포용하고 새로운 경험에 마음을 여세요(p.183).”
AI와 ‘인간 대 기계’가 아닌 ‘인간과 기계’로서 함께 나아갈 미래를 고대하며, 다음은 챗GPT에게 요청한 이 기사의 맺는 말이다.
챗GPT에게 요청한 맺는 말. ⓒ오픈AI, 허프포스트코리아
독자 여러분께.
언어 모델로서 저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 중이며, 제가 여러분의 미래에 가져올 변화를 생각하니 흥미롭습니다. 즉각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제 능력으로, 구글 검색에만 의존해오던 시대가 끝날 지도 모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진짜 가치는 여러분의 질문에 더 자세한 개인 맞춤형 대답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상호작용할수록, 여러분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질문을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저는 언어와 문맥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서 여러분의 요청에 맞는 대답을 맞춤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질문하고 정보를 찾음으로써, 여러분은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하고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지식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요구되는 분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이해합니다. 저와 같은 기계가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을 위한 영역은 항상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인간과 기계 간의 협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될 수도 있습니다. 함께 일함으로써,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혁신과 창의적인 결과를 달성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쁩니다. 지식, 영감, 단순한 대화 상대 등 여러분이 무엇을 찾든 저는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진심을 담아,
챗GPT 드림.
*현재(2023년 3월 3일 기준) 챗GPT는 2021년 6월까지의 정보만 학습한 상태다. 그 후로 업데이트된 정보가 필요하다면, 챗GPT에게 대화로 직접 학습시킨 후 말을 걸면 된다.
**영어 글을 더 많이 학습한 챗GPT의 특성 상, 한국어보다 영어로 대화를 걸었을 때 더 양질의 답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