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타임스. 1785년 창간된 영국의 신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 신문으로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 등 이름에 타임스가 붙는 소위 '묵직한' 신문들의 원조이기도 하다.
그런 더 타임스의 세계뉴스 섹션에는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주를 이룬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물론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도 있다. 그리고 한국의 천공도 여기에 등장했다. 놀라운 일이다. 그는 정치인도 연예인도 아닌 역술가이기 때문이다.
더 타임스 기사 화면 캡처. ⓒThe Times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점쟁이가 나를 조종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더 타임스에 게재된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표 사진에는 버젓이 천공의 사진이 들어가 눈길을 끈다.
기사는 "윤 대통령이 최근 미신에 빠져 정치적 판단이 흐려졌다는 소문을 잠재우려 한다"며 이를 위해 "청와대 이전에 '라스푸틴과 비슷한' 역술인 천공이 개입됐다고 주장한 기자, 국회의원, 전 국방부 대변인 등 7명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고 설명했는데.
'라스푸틴'이라는 이름이 익숙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풀네임 그리고리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 때의 인물로 떠돌이 수도자 신분이었으나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를 치료한 뒤 황제의 신임을 얻어 비선실세로 등극한 '요승'이다. 후대에 와서는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앞당긴 간신의 대명사로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리 라스푸틴. ⓒ유튜브 채널 Biographics
니콜라이 2세 황제 일가족.ⓒ유튜브 채널 Biographics
불행히도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이미 이 '라스푸틴과 비슷한' 인물이 나온 바 있다. 바로 2016년 전국을, 아니 전 세계를 뒤집어놓은 박근혜 게이트의 주역 최서원이다.
공식 명칭 '박근혜 정부의 최서원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은 최서원이 박근혜 정부 국정 개입과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케이스포츠의 사유화, 최서원 딸 정유라의 대입 특혜 등을 포함하는 사건이다.
최서원. ⓒ뉴스1
최서원의 죄목이 밝혀지고 그가 법정에 서면서 더 타임스, 더 가디언, CBS 뉴스 등 다수의 외신들은 그를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지칭했는데. 국가 권력자를 뒤에서 조종하는 비선실세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최서원의 아버지 최태민이 승려 겸 목사 겸 교주로서 박 전 대통령 곁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천공을 집중 조명한 해당 기사는 대선 토론 당시 윤석열 대통령 손바닥에 그려진 '왕(王)'자부터 김건희 여사가 점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점까지 기술하며 천공과 현 정부 사이의 관련성을 세세히 짚어나갔다.
기사는 이렇게 끝맺음된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미신에 대한) 믿음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 부패 혐의로 3년간 감옥에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가 있지 않은가. 박 전 대통령의 범죄 중 일부는 청와대에서 제사를 지내던 점쟁이와 연관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