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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맛, 콩나물의 맛
ⓒ한겨레

전라도 한 지방의 콩나물 전문 생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굳이 그 먼 지방의 그에게 연락을 하게 된 건, 순전히 인터넷 때문이었다. '두채'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맨 먼저 정보가 떠올랐다. 그는 그 지방 '두채생산조합'의 이사장이었다. 두채가 뭐냐고? 물론 나도 몰랐다. 대저 성스러운 무슨 무슨 협회나 조합의 이름에 한글을 박아넣는 건 불경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이를테면, 전국구서(驅鼠)협회는 전국쥐잡기협회가 이름을 갈아탄 것일 테다. 그런 연유로 콩나물이 바로 두채가 됐다. 콩 두(豆), 나물 채(菜). 이 용어에서 무심한 듯 깊은 맛을 보여주는 그 간결한 콩나물의 느낌은 배어나오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긍께, 뭐라고요? 글 쓴다고요? 콩나물을 글에 뭐더러 쓴다요?"

나는 여차여차, 이러저러한 사정을 설명했다. 콩나물, 아니 두채에도 계통이 있을 것 아니냐, 글을 쓰려면 그런 걸 알아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알았소만, 거시기 꼽슬이랑 일짜, 그런 거 말이어라?"

네, 그렇습니다. 그의 강의는 전화기를 타고 오래 이어졌다. 수온과 계절의 관계, 발아의 비밀 따위를 그는 얼굴도 모르는 내게 알려주었다.

"그것이 말이어라, 콩이 물을 먹고 살살 꼬리를 내리는데, 그거 기분이 삼삼하지라. 그 똥그란 콩에서 길쭉길쭉 꼬리가 나온다는 게 신기해서 이 일을 시작했구만이라."

나는 콩나물의 계통이 궁금했다. 그에 따르면 콩나물은 곱슬이, 일자, 찜용 이렇게 나뉜다. 곱슬이는 우리가 늘 보는 콩나물의 모양을 말한다. 곱슬곱슬하게 줄기가 휘어 있다. 일자(一字)는 문자 그대로 길쭉하게 뻗은 것이다. 찜용은 주로 아귀찜에 최적화된, 줄기가 굵은 것을 말한다.

"찜용이 키로당 한 일이천원 더 나갈 거요. 근디 이런 걸 뭣에 쓴다요. 희한하네, 참말로. 전에 어떤 신문기자는 콩나물에 약을 치냐 어쩌냐 물어쌓더만......"

내가 그 희한한 취재를 하게 된 건 오래전의 기억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갓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 변두리에 있었다. 막 농촌이 해체되면서 공장과 도시에 필요한 노동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일군 동네였다. 워낙 그런 곳이 그러게 마련이어서 애들은 무지하게 많이들 낳았다. 그 덕에 문교부에서 열심히 학교를 새로 지어대도 늘 교실이 모자랐다. 콩나물시루라는 은유는 그 시절 신문 기사의 단골이었다. 변두리의 그들이 출근을 위해 타던 버스에도, 그 자식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갖다붙이는. 내가 다닌 학교는 밀려드는 학생을 수용하느라 저학년은 3부제 수업을 했다. 오후 2시쯤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선생들은 몽둥이와 기합으로 그 돼지새끼들처럼 시끄러운 도시 빈민의 자식들을 몰아쳤다. 한반에 60명이 들어도 겨우 수업이 될까 말까일 텐데, 자그마치 80~90명을 때려넣었다. 한 학기가 다 가도록 담임선생은 자기 반 학생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다 못 외울 지경이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학생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담임이 어느날 내게 교무실 옆에 있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라고 시켰다. 그 시루는 현대적으로 개량된 것이었다. 나무로 틀을 짜고, 여닫이문 앞에 검은 천을 덮어두었다. 먼저 천을 들추고 몸을 넣고서 빛이 완전히 차단되었는지,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천지인지 확인한 다음, 살짝 천을 열어 빛을 조금 확보한 뒤 여닫이문을 열고 콩나물에 물을 뿌렸다. 만약 콩나물 대가리에 푸른빛이 돌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잘 알았다. 나는 물을 줄 때마다 혹시나 푸른빛이 돌지나 않는지 마음을 졸였다. 그건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어 어쩌다가 시장에서 푸른 대가리의 콩나물을 마주치면 죄책감이 들 지경이었다. '어떤 녀석이 여닫이문을 잘 닫지 않았지?'

나중에 광합성을 배우면서, 나는 콩나물을 떠올렸다. 서양 근대과학이 발견한 혁혁한 성과, 식물이 지구를 살찌운 결정적 메커니즘인 광합성을 배신하려는 콩나물의 은둔자적 태도 말이다. 광합성의 욕망을 억제한 대신 콩나물은 뿌리를 곧게 뻗었다. 그래서 콩나물에선 음지의 기운이 난다. 그 고유한 비린내는 아마도 태양을 모르는 식물의 체취랄까, 본능을 제어당한 슬픈 냄새인지도 모르겠다.

서양에서는 콩나물이 식민 경영과 장거리 원정에 한몫 보탰다. 신선한 채소를 먹지 않으면 살이 푹푹 썩어들어가는 괴혈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다. 콩에 물을 주면 싹이 나온다. 식민의 배에 콩을 싣고 물을 주었다. 콩나물도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이젠 모두들 봉지 콩나물을 먹는다. 제조연월일을 확인하고 값을 치른다. 과거에는 콩나물의 선도를 확인하는 예리한 촉수가 필요했다. 냄새를 맡아보고, 뿌리가 반투명하게 물러지지는 않았는지 노려봐야 했다. 정확한 무게로 팔리는 봉지 콩나물과 달리, 과거의 콩나물은 손대중으로 팔았다. 주인의 마음 씀씀이나 기술에 따라 무게가 달랐다. 어머니는 그래서 심부름하는 내게 100원을 쥐여주며 이렇게 말씀하시던 것이다.

"50원어치씩 두봉지를 달라고 해라."

고깃집에서 기어이 5인분 대신 3인분, 2인분으로 나눠 시키는 우리의 사려 깊은 경계심은 이미 오래된 우리 민족의 습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주인에게 빤한 속마음을 들키기 싫었다. 100원어치를 사서 두봉지에 나눠 담아 들고 갔다. 어머니의 꾸중이 없었으니, 그 잔꾀는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요리를 배웠다. 칼질도 못하던 내가 유일하게 어머니 일손을 도와드리던 콩나물이여...... 반투명하고 검은색이 비치는 껍질을 벗기고 노란 대가리가 선명하게 손질을 했다. 수북하게 쌓은 말끔한 콩나물은 내가 배운 가사노동의 첫번째 성과였다.

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먹는다. 그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나는 '어른이 되는 맛'이라고 하겠다. 어른들만이 아는 맛이라고 하겠다. 무심하고 밋밋한 콩나물이 전부인 그 국물은 자극이라고는 모르는, 요즘 같은 선동적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맛이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더 콩나물국을 찾는 것일지도. 남부시장의 국밥집 아낙은 막 다진 매운 고추와 마늘, 파를 내가 시킨 국밥 그릇에 쏟아넣는다. 막 터진 그 양념의 액포들이 콩나물과 함께 휘발한다. 노랗고 맑은 콩나물국을 한숟가락 뜬다. 거기에 내 어린 날의 냄새가 자욱하게 번진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뜨거운 한 입>(창비, 2014)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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