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 결과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12곳, 국민의힘은 4곳에서 승리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압승이지만 국민의힘 역시 핵심 승부처를 지켜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가장 뜨거운 격전지로 주목받았던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한동훈 무소속 후보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를 모두 제치고 당선을 확정지었고, 오세훈 후보 역시 4일 새벽 정원오 후보를 극적으로 따돌리며 헌정 사상 최초의 '5선 서울시장' 타이틀을 따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왼쪽)과 한동훈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당선인이 4일 오전 당선을 확정짓고 지지자들에 화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기간 내내 장동혁 대표와 단 한 차례의 합동 유세도 하지 않으며 선을 그었던 오 후보와, '당원 게시판 가족 계정 의혹'으로 장동혁 지도부 체제에서 제명됐던 한 후보가 이번 선거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점도 눈길을 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온 인물들인 만큼 향후 장동혁 체제의 리더십이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은 49.15%를 득표해 정원오 후보를 1.02%포인트 차로 제치고 당선됐다. 한동훈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당선인 역시 42.96%를 득표해 하정우 후보를 1.75%포인트(1425표) 차로 앞서며 신승했다. 두 사람 모두 개표 초반 열세를 보였으나 4일 새벽 이후 판세를 뒤집으며 역전승을 거뒀다. 개표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둔 만큼, 보수층 결집 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번 승리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사상 첫 5선 서울시장이라는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 기간 내내 강성 보수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장동혁 지도부와 거리를 두며 독자적 선거운동을 펼쳤고, 결국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이를 통해 오 시장이 보수 진영 내에서 중도 확장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 시장이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정비사업 활성화 기조를 일관되게 강조한 점이 강남3구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의 호응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오 시장에게 가장 고무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는 2030 남성층으로부터 받은 압도적 지지다. 3일 실시된 지상파 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 오 후보는 20대 남성에서 75.3%, 30대 남성에서 66.8%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4일 JTBC 유튜브 시사채널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의 70% 정도가 오세훈 후보를 찍었다"며 "오세훈 시장 측이 2030세대를 겨냥해 내놓은 서울런 같은 정책들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와닿았고, 이것이 선거 막판 판세가 뒤집히는 결정적 차이를 만들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장동혁 대표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중도층 확장성과 함께 젊은 보수층의 높은 지지까지 확보한 오 시장은 이번 승리를 계기로 당내 영향력을 한층 키울 것으로 보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4일 경기 과천시 중앙동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떠나며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항의 집회 현장 참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당선인 역시 이번 부산 북구갑 승리를 통해 원내 진입에 성공한 것은 물론,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체급까지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기적으로 봐도 이번 승리로 한 당선인은 향후 보수 진영의 권력 재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현재 장동혁 체제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평가되는 윤어게인 세력을 넘어 보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된다.
이번 선거 막판까지도 한 당선인을 둘러싼 친윤계와 친한계의 갈등은 이어졌다. 친한계 인사들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한동훈 후보를 다시 품어야 한다며 사실상 한 후보 지원에 나섰고, 장동혁 지도부는 이를 해당행위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한 당선인이 승리하면서 국민의힘 복당 신청과 함께 당내 친한계의 발언권 역시 한층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장동혁 지도부가 제명한 한동훈 전 대표의 의회 입성과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서울을 지킨 오세훈 시장의 승리는 합리적 보수 재건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며 "민심은 천심이다. 당 지도부는 거취를 속히 정하라"고 주장했다.
장동혁 대표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예상을 웃도는 성적을 거뒀음에도 이를 온전히 자신의 성과로 내세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장 선거 승리는 선거 기간 내내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두며 독자 행보를 이어온 오세훈 시장의 경쟁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대구시장 선거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가 보수층 결집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는 민주당 12곳, 국민의힘 4곳으로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인 만큼 장 대표가 책임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적 위상이 한층 높아진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당선인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예상 밖 선전에도 장동혁 체제의 리더십이 향후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