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2일, 차기 KB국민은행장으로 내정된 이재근 당시 부행장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세대교체'라는 키워드를 두고 한 말이다.
그로부터 약 5년 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이재근 KB금융지주 글로벌부문장 겸 WM·SME부문장(회장 후보 내정자)을 최종 회장 후보로 내세우며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이재근 내정자는 5년 전과 비슷한 질문을 받았고,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이재근 내정자는 올해 9월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젊은 KB'라는 말의 의미는 나이보다 의사결정을 신속하고 책임 있게 하는 것"이라며 "나이에 국한하지 않고 전문성과 직원들과의 호흡, 조직원의 헌신을 이끌어낼 리더십을 기준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세대교체'와 '역량'이라는 두 가지 인사 키워드가 동시에 제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내정자의 첫 계열사 인사를 앞두고 이 내정자보다 나이가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의 호실적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이홍구 KB증권 WM부문 각자대표이사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홍구 사장이 자산관리(WM) 부문을 맡고 있는 KB증권은 올해 3분기까지 순이익 1조 원을 넘겼다. 이환주 행장이 이끄는 KB국민은행도 연간 순이익 4조 원 달성을 가시권에 뒀다.
◆ 이홍구의 ‘1조 증권’, 지난해 연임 근거였던 WM 사업은 이익 급증
2일 KB금융지주에 따르면 이번 달 20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는 이 내정자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상정된다. 선임 절차를 마치면 이 내정자는 21일부터 3년 동안 그룹을 이끌게 된다.
취임 직후에는 계열사 CEO 인사가 기다리고 있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KB금융 계열사 CEO는 10명이다. 이 가운데 나이와 입행 경력에서 이재근 내정자를 모두 앞서는 인물은 이환주 행장과 이홍구 사장 등 2명이다. 이재근 내정자는 1966년생으로, 이환주 행장(1964년생)과 이홍구 사장(1965년생)보다 어리다.
이홍구 사장이 몸담고 있는 KB증권은 올해 3분기까지 1조675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4.9% 증가하면서 9개월 만에 순이익 1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이 사장이 담당하는 WM 사업이 실적 성장을 이끌었다. KB증권의 WM 부문 총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누적 7289억 원에서 올해 1조4947억 원으로 105.1% 증가했다.
이 사장은 2024년 취임해 2024년 말, 지난해 말 두 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이 사장이 지난해 연임에 성공할 당시에도 주요 평가 대상은 WM 사업에서 거둔 성과였다.
KB금융지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는 지난해 12월 이 사장의 연임을 추천하면서 고객 중심의 영업 기반 강화와 개인별 수요에 맞춘 디지털 플랫폼 고도화를 통해 WM 자산을 확대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올해에는 WM 부문의 이익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이 사장의 연임을 뒷받침할 실적이 더해졌다. 다만 지난해 연임 당시 인정받았던 고객 자산 확대에서는 이익만큼 가파른 성장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9월 말 기준 KB증권의 WM 자산은 80조3천억 원으로 6월 말보다 4% 증가했다. 같은 기간 리테일 고객 총자산이 8.8% 감소한 상황에서도 WM 자산은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말을 기준으로 보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지난해 9월 말 WM 자산이 80조2천억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동안 증가율은 0.1%에 그쳤다. WM 부문 누적 총영업이익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과 달리 WM 자산 규모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증시 변동성'이라는 변수에도 직면해 있다.
KB증권 WM 부문의 3분기 총영업이익은 3502억 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45.1%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개인 주식시장 거래대금도 45.5% 줄었다. 올해 상반기의 증시 호황에 힘입어 3분기 누적 기준 순이익은 급증했지만, 고객 자산 확대와 안정적 수익 창출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추가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이다.
◆ 이환주의 '4조 은행'도 가시권, 첫 연임 앞두고 기업금융 확대 성과
이환주 KB국민은행장도 첫 연임 심사를 앞두고 지난해보다 개선된 실적을 확보했다.
KB국민은행의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3조576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증가했다. 4분기에 4237억 원을 추가로 벌어들이면 연간 순이익 4조 원을 달성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연간 순이익 4조 원을 기록한 곳은 없다.
이 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해 올해 말 첫 2년 임기를 마친다. 이미 3년 동안 KB증권을 이끌어온 이홍구 사장과 달리 올해 심사가 첫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라는 차이가 있다.
이 행장은 특히 올해 초 직접 강조했던 기업금융 확대 전략에서 성과를 거뒀다.
이 행장은 지난 1월 경영전략회의에서 기업금융 경쟁력 강화를 핵심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기업금융 담당 인력인 RM의 비중을 지난해 말 34%에서 37%로 높이고, 영업점의 기업금융 업무 수행 기반도 확대했다.
실제로 국민은행의 대출자산에서도 기업금융 비중이 확대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9월 말 KB국민은행의 원화 기업대출 잔액은 204조8천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조7천억 원, 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율은 1.5%에 그쳤다.
이 행장이 취임 2년 차를 맞아 기업금융 역량 강화에 힘을 실은 결과가 실제 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올해 순이익 증가에는 영업 확대뿐 아니라 일회성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KB금융은 인도네시아 중간지주회사 설립 과정에서 국민은행과 국민카드가 자회사 주식을 양도하면서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감소한 법인세 규모는 두 회사 합산 2310억 원이다.
KB국민은행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 증가율은 4.1%로 순이익 증가율 6.3%를 밑돌았다. 기업금융 확대에 따른 영업 성과와 세금 감소 효과가 함께 반영된 만큼 순이익 증가를 모두 영업 경쟁력 개선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 WM·SME 전문가 이재근이 같은 분야의 CEO 성과를 심사한다, '회장 권한' 어디까지 미칠지도 관심사
이환주 행장과 이홍구 사장이 각각 힘을 실어온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사업은 이재근 내정자가 지주에서 직접 담당해 온 업무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도 이번 인사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이 내정자는 현재 KB금융지주 글로벌부문장과 WM·중소기업금융(SME)부문장을 겸하고 있다. 두 CEO가 성과를 거둔 사업은 이 내정자 역시 그룹 차원에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 온 분야인 셈이다.
이번 인사에서 이 내정자가 '회장 최종 후보'로서의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지도 금융권의 관심사다. 이 내정자가 회장 후보로 선정된 뒤 계열사 CEO 인사에서 회장 개인의 판단보다 조직의 의사결정 절차가 중요하다는 뜻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내정자는 9월14일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장이 전부 힘을 갖고 인사를 하기보다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