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에 관계 회복의 손을 내밀면서도 충돌이 확대되면 승자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언급은 서유럽 안에서 '러시아의 서유럽 침략'이 임박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서유럽에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공습 등을 보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결국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끝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일부 유럽 국가들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평화를 모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월29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계기로 케냐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각) "우리는 준비돼 있지만 유럽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상황이 너무 멀리 치달으면 승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유럽과의 관계 회복을 지지하면서도 발트해에서 선박 통행을 제한하려는 움직임 등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 행위에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언급도 내놨다.
이 발언은 핀란드·노르웨이 정상과의 전화 통화 이후 나왔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27일 헬싱키에서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다. 두 정상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예정된 평화협상 교섭을 앞두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평화협상은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3개국만 참여한다. 이번 전쟁 초기부터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유럽은 이번 협상에 끼지 못했다.
유럽에는 러시아의 '영토 야욕'을 경계하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유럽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지켜보면서 러시아의 팽창을 경계해 왔다. 서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면적 지원에 나선 것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막아줄 방패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스투브 대통령도 이번 전쟁의 결과가 유럽 전체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러시아 공포'는 최근 구체적 모습까지 띠기 시작했다. 가디언은 22일 러시아 등 적대국이 기반시설을 공격할 위험을 짚었다.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전기나 통신이 끊겨 일상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도 이날 가정에 사흘치 생수와 보존식품 등을 준비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이는 폭풍 등 자연재해를 포함한 비상상황 전반에 대비하는 지침이었다.
반면 러시아는 일관되게 서유럽을 침략할 뜻이 없다고 밝혀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도 2014년 결정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결정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실제 러시아는 이번 전쟁의 종전 또는 휴전의 절대적 전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철회 및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요구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관계자 3명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핀란드 노르웨이 지도자와 90분간 나눈 통화에서 유럽의 역사와 이번 전쟁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NATO의 동진(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전쟁의 궁극적 원인이며 이 문제의 해결이 없다면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미국의 태도는 유럽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유로뉴스는 28일 분석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에 우호적인 행보가 유럽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러시아산 경유 수입에 합의하고 러시아 에너지 수출에 대한 새 제재를 보류했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멈추라고 압박했다. 이윽고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3자 휴전협상까지 11월 초 시작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항복에 가까운 합의를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유럽에서는 나온다.
한편 유로뉴스는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와 직접 대화에 나서고 있다고 전망했다. EU는 11월 초로 예상되는 아부다비 협상에 보낼 공동 대표단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