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전기자동차(EV)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딛고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를 새로운 실적 회복 축으로 키우는 데 자신감을 나타냈다. 경쟁사와 비교해 신중하게 움직여 온 배터리 사업에서 이례적으로 수주 성과를 구체화한 데 이어 연말까지 추가 일감 확보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최 사장은 삼성SDI의 북미 현지 생산거점에서 ESS 배터리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기존 생산라인의 활용 범위까지 넓히면서 늘어난 수주를 소화할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회복에만 기대지 않고 성장 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은 구체적 실적 성과로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최 사장은 연말 수주 확대와 북미 생산체계 안착을 바탕으로 2023년 이후 4년 만인 2027년 ‘영업이익 1조 원대’ 복귀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를 앞세워 지난해 실적 부진을 털어내고 있다. 사진은 최 사장이 3월18일 서울 강남구 엘리에나 호텔에서 열린 삼성SDI 제56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삼성SDI
3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SDI가 3분기 시장기대치를 뛰어넘는 우수한 실적을 낸 것을 넘어 ESS 수주 규모를 공개한 것에 의미를 두는 시각이 나온다.
삼성SDI는 전날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1~10월 미국 전력용 시장을 중심으로 ESS 배터리 신규수주 60GWh(기가와트시)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삼성SDI가 정확한 수주 규모 자체를 공개한 것이 최초라는 것이다. 배터리 시장이 개화한 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경쟁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성장을 향한 기대감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면서 결과로 증명하려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북미 배터리 생산시설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연간 생산능력 확보 전망치를 꾸준히 시장과 소통했고 신규수주나 수주잔고를 지속해서 발표해 왔다. 삼성SDI는 상대적으로 배터리 설비 증설에 보수적으로 접근했을 뿐만 아니라 생산능력이나 수주 규모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없었다.
다만 이번에 처음으로 연간 신규수주 규모를 공개한 것은 최 사장이 앞으로 ESS 배터리 사업을 향해 자신감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원석 iM증권 연구원은 이날 삼성SDI 분석보고서에서 “삼성SDI가 전기차 또는 ESS 관련 배터리 수주 규모를 공개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최초”라며 “ESS 배터리 사업을 향한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최 사장은 올해 삼성SDI의 ESS 배터리 수주를 연말에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SDI는 올해 120GWh 이상의 ESS 신규수주를 목표로 내놨다. 1~10월 60GWh 수준의 물량을 따냈는데 남은 2개월에 앞선 10개월 동안 확보했던 일감을 넘어서는 규모의 수주를 할 수 있다는 현황을 공개한 것이다.
삼성SDI는 26일 미국 에너지 전문기업 알파오메가파워와 1GWh 규모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면서 다수의 현지 고객사와 지속해서 공급계약을 협의하고 있다는 점, 조만간 추가 수주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리기도 했다. 이 추가 수주의 규모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사장은 풍부한 수주물량과 함께 북미 신규 생산라인 가동을 계기로 삼성SDI의 실적 반등을 꾀하고 있다. 특히 ESS 배터리를 앞세워 올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실적 개선의 기조를 확보해 가는 모양새다.
삼성SDI는 3분기 연결기준 매출 4조6856억 원, 영업이익 4078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1년 전보다 매출은 52.6% 늘었고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영업이익은 기존 시장기대치(1913억 원)를 웃돌면서 7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던 2분기의 흐름을 이어갔다.
물론 3분기 실적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추진해 오던 합작법인 시너지셀즈의 종료에 따른 보상금 등이 일시적으로 반영됐다. 다만 이 보상금과 충당금 등 일회성 손익을 제외한 영업이익은 2천억 원 수준을 기록하며 본업 경쟁력만으로도 이익을 창출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삼성SDI 영업이익은 올해 6천억 원 수준으로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한 뒤 내년에는 1조5천억 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SDI 대표 첫해부터 1조7224억 원의 영업손실을 마주했던 최 사장이 ESS 배터리 경쟁력을 토대로 빠르게 실적 정상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삼성SDI는 2025년 글로벌 친환경 정책 변화, 전략 고객의 판매 부진 등에 따른 전기차 판매 감소, 관세 부담, 소형 전지 수요 회복 지연 등의 영향으로 수익성이 크게 저하됐다.
삼성SDI는 4분기부터 북미 현지에서 ESS 배터리 생산을 본격화해 수주물량을 소화하며 실적 회복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10월부터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에서 각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을 개시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스타플러스에너지에서 ESS 배터리용으로 전환하고 있는 라인 2개가 추가로 LFP 배터리 생산에 힘을 보탠다.
중기적으로는 2028년 시너지셀즈에서도 ESS 배터리를 생산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다. 삼성SDI는 북미 첫 단독 생산기지인 시너지셀즈를 우선은 수요가 높은 ESS 배터리 생산거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최 사장은 앞으로 확보해 둔 배터리 일감을 차질 없이 공급해 고객사의 신뢰를 쌓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전날 콘퍼런스콜에서 “앞으로는 수주 확대뿐 아니라 수주물량을 고객 일정에 맞춰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4분기에도 ESS 배터리 사업 등에서 꾸준한 성장세가 지속돼 흑자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수익성 기반의 중장기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