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규모 후방 공습이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주요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방공망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북유럽 정상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긴장완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10월 들어 러시아의 후방 공세가 수도와 국가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상황에 이르자 북유럽 지도자들이 '외교적 절박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왼쪽)와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 EPA=연합뉴스
27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가디언 등 외신을 종합하면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과 약 90분간 전화 통화를 갖고 러시아 측에 종전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이번 통화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올레슈키에서 민간인 약 2천 명을 대피시키기 위한 일시적 휴전이 시작된 가운데 이뤄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은 해당 지역에 한정해 주민 대피와 구호물자 전달을 위해 드론 공격을 중단했으며, 휴전은 11월1일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정상이 이번에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것은 서유럽과 북유럽 정상들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꺼려왔다는 점에서 이례적 행보로 꼽힌다.
특히 이번 통화가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수도와 후방이 심각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이날 새벽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지역에 탄도미사일 16발과 드론 280대 이상을 발사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이 가운데 탄도미사일 2발과 드론 255대를 요격하거나 무력화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수도 키이우에서는 밤새 도시 전체에 섬광과 폭음이 연달아 퍼지는 심각한 피해를 짐작하게 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정부의 요격 주장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및 드론 공격으로 키이우의 드니프로강을 가로지르는 남부대교가 파손됐다. 이 다리는 도로와 철도가 함께 통과하는 핵심 교통시설로, 공격 이후 차량 통행과 일부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다. 서울의 한강 다리에 견줄 만큼 키이우 물류의 핵심 시설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방어하는 방공망을 뚫고 주요 교통시설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및 드론 공격을 막아낼 요격미사일마저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겨울철 최소한의 방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300발 이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10월27일 패트리엇과 나삼스(NASAMS) 방공체계에 필요한 요격미사일의 공급 지연이 러시아의 공격을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공습이 거세지는 반면 이를 막아낼 방어 수단은 부족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궁지에 몰리자 서유럽에서도 외교적 위기의식이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이번 통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러시아 제재 완화 기조와 미국·우크라이나 관계 악화 속에서 유럽이 종전 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이번 통화는 지난 2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미국 측과의 회동을 계기로 추진됐다. 당시 회동에 참석한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종전 협상에서 유럽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두 정상은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해 11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협상을 앞두고 유럽의 안보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스투브 대통령은 10월27일 핀란드 대통령실과 노르웨이 총리실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이웃 국가들로 이 전쟁의 결과는 우리와 유럽 전체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전쟁을 끝내려면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스퇴레 총리도 같은 발표문에서 "전쟁은 막대한 인명 피해와 물질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으며, 고통과 파괴의 영향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며 "이번 통화에서 긴장 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 내부에서 이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나왔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북유럽 정상들의 독자적인 접촉에 회의적 입장을 드러내며 유럽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러시아 역시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통화 이후 자국의 이익이 완전히 반영돼야 지속적 평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