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배우와 거장 감독, 막대한 제작비까지 투입됐지만 영화 '디거'가 흥행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제작진과 출연진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것과 달리, 국내외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흥행 참패의 원인을 둘러싼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 '디거'에서 주연 '디거 록웰'역을 맡은 배우 톰 크루즈는 10분에 달하는 장면을 원테이크로 찍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6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의 실시간 예매 통계에 따르면 '디거'의 국내 누적 관객 수는 9만7114명에 불과하다. 10만 관객을 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일 예매 관객 수도 900명 남짓에 그쳤다. 예매율 역시 0.4%에 불과해 흥행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디거'의 전 세계 누적 수익은 약 4646만 달러(한화 약 613억9224만 원)로,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약 3억 달러(한화 약 3964억 8천만 원)에 한참 못 미친다. 공식 발표된 제작비만 약 1억2500만 달러(한화 약 1652억 원)에 달하는 만큼, 현재 성적을 고려하면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디거'는 석유 재벌 디거 록웰이 운영하는 그린란드의 빙하 시추 시설에서 발생한 작은 균열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대재앙으로 번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디거 록웰은 톰 크루즈가 연기했으며, 영화 '버드맨'과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이름을 알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세계적인 배우와 감독의 만남에 더해 거액의 제작비까지 투입되면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지만, 기대가 실제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흥행 부진의 원인으로 톰 크루즈의 과감한 이미지 변신과 대중성이 낮은 블랙코미디 장르를 꼽는다. 액션 스타로 각인된 배우가 기존 이미지와 거리가 먼 인물을 연기한 데다, 대중적 오락성보다 풍자와 초현실주의적 연출을 앞세운 점이 관객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작품의 흥행을 가른 결정적 요인으로는 개봉 초반 형성된 부정적인 입소문이 거론된다. '디거'는 개봉 초기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평점 집계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와 메타크리틱에서 각각 50점대 초반과 40점대 후반의 낮은 평가를 받았다. 레딧 등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작품에 대한 초기 평가가 관객들의 관람 의향에 영향을 미치면서 흥행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낮은 점수를 준 평론가들이 문제 삼은 것은 기후 위기와 권력의 부패라는 주제 자체보다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작품을 '무거운 초현실주의적 강의'라고 표현했고, 로저이버트닷컴은 '인간성이 결여된 경멸적 설정'이라고 평가했다. 영화가 권력자들을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로 묘사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인물의 입체성을 살리지 못했고, 그 결과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반면 흥행 성적만으로 '디거'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할리우드 안팎에서는 작품의 실험성과 예술적 시도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잇따라 지지를 표명했다. 배우 앤 해서웨이는 영화에 최고점을 주며 직접 관람해 볼 것을 권했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흥행 성적만 보지 말고 예술을 사랑하라"는 취지로 작품을 옹호했다. 배우 벤 애플렉 역시 "위험을 감수하는 영화가 사라진다면 결국 획일적인 작품만 남게 될 것"이라며 "'디거'는 흥행성적과 별개로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고 평했다.
국내 평론가들의 평가도 호의적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본인의 블로그에 '풍자와 역설로 미친 듯이 파들어가다 이르게 된 아득한 공동'이라는 평과 함께 5점 만점에 4점을 줬다. 박평식 평론가는 '우습고 따갑고 대담한 디깅'이라고 표현하며 10점 만점에 7점을 부여했고, 김성훈 평론가도 '뉴 마가 시대에 바치는 아름다운 위로'라는 평과 함께 10점 만점에 8점을 줬다.
현재 '디거'의 씨네21 국내 전문가 평점은 6.86점을 기록하고 있고,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8.6점을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