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LG화학 대표이사 사장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사업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의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사업화가 지연되는 사이 경쟁사들이 국내외 배터리 제조사들과 잇달아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2023년 북미 시장을 겨냥해 2026년부터 LFP 양극재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현재는 2028년 이후 양산을 목표로 개발과 경제성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규제 강화로 비중국산 배터리 소재의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시장 진입 시점이 당초 구상보다 늦어진 것이다.
LG화학은 북미 ESS용 분리막 사업에서 성장 기회를 확보하고 있지만, 배터리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양극재에서는 경쟁사보다 사업화가 늦어지고 있다. 김 사장으로서는 LFP 양극재의 경제성을 확보하고 시장 진입 시점을 구체화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김동춘 LG화학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먼 미래를 보는 사이 LFP 양극재 시장의 기회는 경쟁사들이 선점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20일 배터리소재 및 증권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중국 기업들의 미국 ESS 시장 철수 움직임이 LG화학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LFP 양극재 시장에서 수혜를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LG화학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동춘 사장은 6월 타운홀 미팅에서 반도체·모빌리티·로봇 소재, 항암 신약을 미래 핵심 사업으로 키워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사업 비중을 늘려 2030년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정했다.
이를 위해 LG화학은 2035년까지 연구개발(R&D)에 총 15조 원을 투자하고 이 가운데 70%를 반도체·모빌리티·로봇 등 육성사업에 배분하기로 했다. 6월에는 최고경영자(CEO) 직속 신사업 개발 조직까지 신설했다. 이 청사진의 주인공은 LFP 양극재가 아니었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일 보고서에서 "미국 ESS 시장의 탈중국화는 LG화학의 자회사 가치와 소재 이익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변화"라며 "수혜는 분리막에서 먼저 확인되고 이후 LFP 양극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앞서 대만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지타임스는 19일 공급망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ESS 공급업체들이 2026년 미국 현지에서 거의 전면 철수하는 수순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고강도 규제, 관세, 지분 심사 강화와 중국 정부의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통제 등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디지타임스는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으면서 중국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제조업체들에 큰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미 ESS 시장의 성장 속도도 빠르다. 전기차·배터리 전문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북미 ESS 출하량은 75.9기가와트시(GWh)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83% 늘었다. 이 시장에서 LG화학의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은 10.3GWh를 출하해 점유율 13.6%로 3위에 올랐다. 1위부터 5위는 CATL(중국), 하이티움(중국), LG에너지솔루션(한국), CALB(중국), 삼성SDI(한국) 순이었다.
LG화학의 분리막 사업의 전망은 밝다. LG화학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2026년 분리막 사업이 부진한 전기차 시장에도 불구하고 북미 ESS 중심의 물량 확대로 약 40% 성장하고, 분리막 매출에서 ESS가 차지하는 비중도 60~7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배터리 원가에서 40%가량을 차지하는 양극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LG화학의 주력은 ESS에 주로 쓰이는 LFP 양극재가 아닌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하이니켈 양극재이기 때문이다.
LFP 양극재 양산 시점도 뒤로 밀렸다. LG화학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2028년 이후 양산을 목표로 LFP 양극재의 개발과 경제성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1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양산 목표를 2027년 말~2028년 초로 내걸었으며,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사업화 목표를 2027년 내로 제시한 바 있다.
LG화학의 LFP 양극재 사업이 난항을 겪는 사이 LG에너지솔루션은 모회사 대신 중국 기업에서 LFP 양극재를 조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 등에 대응하기 위해 LFP 양극재 국산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 수혜는 LG화학의 경쟁사로 향하고 있다. 엘앤에프는 10월14일 LG에너지솔루션과 LFP 양극재 공급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9월17일에는 SK온에 1617억 원 규모의 LFP 양극재를 공급하기로 했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10월6일 삼성SDI에 공급하던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 계약 가운데 일부를 LFP 양극재로 전환해 공급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전환된 공급 규모는 6조515억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