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부실한 보안 대응으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은행들이 대출 가산금리를 낮추는 대신 우대금리를 축소해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줄이려는 은행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행장들이 금리 조정 경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유동수 국회 정무위원장이 직접 질책하기도 했다.
(맨 앞부터)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NH농협은행장이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는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이 일반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환주 행장이 은행장들을 대표해 증인 선서를 했다.
이날 질의는 최근 은행권에서 잇따라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집중됐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신한은행에서 고객 약 2만5천 명의 정보가 유출됐으며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해킹을 인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특히 신한은행의 정보 유출 고객 가운데 자신의 정보가 유출됐는지 조회한 고객이 약 22%에 불과하다며 피해가 실제로 발생한 경우에만 보상하는 것은 입증 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들의 보안 투자 실태도 도마에 올랐다. 김 의원은 지난해 5대 은행의 정보보호 예산 집행률이 하나은행을 제외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며 예산을 확보하고도 실제 투자로 연결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지적하신 부분에 공감하고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은 "신뢰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금융기관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보안 예산과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이호성 하나은행장도 고객들에게 사과하며 "피해가 발생한다면 피해 전체를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장들은 피해 보상 과정에서 고객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실제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하겠다는 원칙만 밝혔을 뿐, 고객이 개인정보 유출과 금융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해야 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KB국민은행의 해킹 초기 대응 과정에 대한 추궁도 이어졌다.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은행이 첫 번째 해킹 공격 당시 단순 IP 차단 조치만 취한 뒤 두 번째 공격을 받아 고객 81명의 정보가 추가로 유출됐다고 지적했다. 최초 공격 이후 정보 유출 정황을 확인하는 데 약 80시간이 걸렸다며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이환주 행장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금융보안원의 통보 이전에 자체적으로 이상 징후를 확인하고 차단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관련 로그 삭제와 은폐 지시가 있었다는 제보에 대해서는 자신이 지시하거나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대출금리 산정 과정에 대해서는 은행들이 법 개정에 따른 금리 인하 효과를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은행이 부담해야 할 법정 비용을 대출 가산금리에서 제외하도록 개정한 은행법이 시행됐지만, 실제 대출금리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가산금리는 지난 6월 3.42%에서 8월 3.34%로 0.08%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우대금리도 1.96%에서 1.65%로 0.31%포인트 줄었다. 가산금리에서 우대금리를 뺀 금리 수준은 오히려 0.23%포인트 높아진 셈이다.
농협은행 역시 가산금리가 0.26%포인트 낮아졌지만 우대금리는 0.61%포인트 축소됐다. 두 항목을 반영한 금리 수준은 0.35%포인트 상승했다.
민 의원은 "은행법 개정 취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대금리를 낮춰 더 많이 가져가는 방식으로 한 것 아니냐"며 "대국민 기망 행위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은행장들은 구체적인 조정 경위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환주 행장과 강태영 행장은 가산금리와 우대금리의 세부 항목을 확인해 별도로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유동수 국회 정무위원장은 "우대금리 정책에 대해서 모르신다는 이야기냐. 그것도 모르고 은행장을 하신다는 것이냐"며 은행장들을 질책했다.
유 위원장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에게도 "은행이 계속해서 엄청난 이익을 이자수익으로 가져가는 것을 방치할 것이냐"며 금리 조정 실태를 점검하라고 요구했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낮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은 농협은행의 올해 상반기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약 18%로 2022년 64.9%에서 크게 낮아진 배경을 물었다. 강태영 행장은 관련 자료를 분석해 수용률을 높일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은행 점포 폐쇄에 따른 금융취약계층의 불편도 거론됐다. 김재섭 의원은 서울 도봉구 등에서 은행 점포가 빠르게 줄어 고령층의 금융 접근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장들은 최근 점포 축소를 자제하고 있다며 취약지역 점포 유지와 금융 접근성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